청명한 가을날씨.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금요일 하루를 휴가내어 2박3일 일정으로 남해 여정을 잡았다.
서울에서 멀기도 멀어 무려 5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서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쌩쌩 기분좋게 잘도 내려 갔다.
고장난 에어컨 덕택에 찜통같은 더위 속에서 내려가야 했지만, 내려가는 동안 채은이도 잘 자주고, 와이프도 잘 참아 주어서 무사히 남해에 도착. 내려오니 하늘과 공기가 다르다.
◆ 남해의 입구, 남해대교와 충렬사
남해는 커다란 두개의 섬으로 되어 있는 지역이다. 나비를 닮은 모양인데 육지로 이어지는 곳이 두군데이다. 한곳이 광양, 하동에서 이어지는 남해대교 라인, 또 하나는 사천으로 빠지는 이른바 삼천포 라인이다. 서울에서 내려가면 대부분 남해대교를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대교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1973년 세워져서 남해군을 육지와 잇는 역할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현수교라 하니 이 작은 다리 하나가 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마땅히 대교라 불릴만 하다.
남해대교는 너무나 빨리 건너지게 되기 때문에 둘러보고 사진이라도 남기려면 남해군 안의 최초 관광지인 충렬사에 들러야 한다. 늘 남해대교와 충렬사가 한세트로 묶이는 이유다. 이순신의 가묘를 모신 충렬사는 기대보다는 단촐하고 쓸쓸하지만, 바다와 어우러진 남해대교를 바라보고, 남해의 첫 냄새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비록 가묘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숙연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묘 옆에 심어진 나무가 그나마 벗이 되어주는 모양이다. 채은이에게 이순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 주었더니 자기 나름대로 축약해서 해석한다. "할아버지가 물에서 싸워서 죽었어"
◆ 남해의 대표 관광지 독일마을
'남해'라고 했을 때 멸치를 떠올리면 나이든 사람, 독일마을을 떠올리면 젊은 사람이다. (마늘을 떠올린다면, 남해 사람이다). VJ특공대부터 각종 정보매체에서 수도없이 소개되어 이제는 남해의 대표 관광지가 된 곳이다. 당초에는 파독 광부들의 노후를 보내는 아름다운 마을 정도 였는데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예쁜 펜션촌으로 변질 되었다. 덕분에 이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보고 하는 건 숙박객에게만 가능한 얘기다. 물론 숙박비는 남해 전체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간다.
주차장은 있지만 전체적인 마을이 비탈길에 늘어서 있어 걸어다니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금요일이었기에 망정이지 주말에는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고 하니 한적한 독일 특유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다면 꼭 평일에 와야 한다.
5시간이나 이동하는 바람에 지쳐있던 채은이도 여기에서는 힘을 내서 돌아다닌다. 조금이라도 걸어주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음주부터 맥주페스티벌이 열려서인지 유난히 사람이 없다. 식당은 잘 안보이고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몇개 있는 수준이다. 길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에는 힘에 부친다. 몇몇 펜션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드라마를 안본 관계로 패스~
독일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크란츠러라는 카페에서 등대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마셨다. 와이프가 고생했다면서 특별히 카푸치노를 하사한다. 채은이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 돌아갔다. 크란츠러는 풍차가 달려있는 건물인데 펜션도 겸하고 있다. 등대를 가지고 있는 예쁜 포구항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인기가 좋은 곳이다.
◆ 독일마을보다 더 아름다운 '원예예술촌'
해가 슬슬 넘어가려고 폼잡는 4시반이다. 독일마을 주차장에서 5분 거리에는 원예예술촌이 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정원과 집을 조성해 놓은 곳인데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그 중 한 곳은 텔런트 박원숙씨가 살고 있는 듯 하다. 입장료는 5천원이며 한바퀴 다 도는데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어서 썰렁한 기운이 있기는 하지만 관람로를 따라서 있는 각양 각색의 주택들을 보면서 도란도란 산책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뭔가 한적한 느낌도 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여유있는 여행을 온 기분이다. 꽃이 만개 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비시즌 덕택에 이런 한적함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원예예술촌은 강제적인 동선으로 헤메지 않고 물 흐르듯이 관람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저 뒤편에 있는 바위는 하하바위이고, 와이프와 채은이 옆의 소나무는 사랑의 소나무다. 아마 둘이 사이좋게 붙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진을 정신없이 찍다보니 해거 어느새 넘어갔다. 슬슬 걸음을 재촉한다. 개인적으로는 원예예술촌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공간의 구성이나 도로의 배치, 각종 볼거리들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배치되어 있는데 웬만한 노력이나 정성 없이는 꾸미기 어려운 일이다. 무작정 짓는 다른 지역 공원과 확실히 차별되는 곳이다. 뭔가 똘망똘망하다고 해야 할까...
해가 완전히 넘어가니 쌀쌀하다. 나중에 은퇴하면 이런 곳에 예쁜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소박하지 않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멸치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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