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째다. 파주 북소리축제를 찾기 시작한 게.
2012년을 빼 놓고 총 세번을 방문했으니, 이제는 축제를 한다 하면 자동적으로 일정을 빼 놓는다. 처음 갔을 때만 하더라도 북바자 정도였던 북소리축제는 나날이 규모가 커져서 이제는 엄청난 인파가 방문하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예전 한적한 느낌이 사라져 버린 점은 좀 아쉽다.
북소리 축제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책들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이지만, 온라인에서 중고서적까지 살 수 있는 마당에 궂이 싼 장터만이 목적은 아니다.
출판단지만이 가지고 있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 아무리 사람이 붐벼도 여유로운 풍광에서의 산책이야말로 매년 이곳을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여기에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보는 맛까지 더해지니, 그 어찌 좋지 않을 소냐..
매년 오다 보니 전형적인 코스가 정해져 있는데, 올해에도 김영사가 첫번째 코스다. 사실 앨리스문고에 들러 채은이 책을 좀 사고 꼬마 기차표도 받았지만 정작 타지는 못했다. 김영사의 경우에는 책만 있는게 아니라 키즈카페도 잘 되어 있어 아이를 놀려 놓고 어른들 책을 둘러 볼 수 있게 되어 있는게 장점이다.
출판단지의 장점중 하나가 어디서는지 화장실, 물, 쉼터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슬슬 배도 고프고 땡볕 때문에 목도 마르다. 아무리 찾아봐도 먹을만한 것이 없다. 그래, 북소리 축제에는 그 흔한 먹거리들이 흔치 않다. 아무래도 단속을 잘 해서인지 호객하는 포장마차는 한 곳도 없고 일부 지역에만 핫도그 정도를 팔 뿐이다. 회오리감자를 하나 쥐어 줬더니 게눈 감추듯 먹는다. 물론 입 주변의 자국도 함께..
산책하듯이 한곳 한곳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교보문고 인근이다. 교보문고 창고 대 세일을 하는 바람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 엄청나다. 내심 줄을 서보고 싶지만, 이미 가지고 싶었던 책 두권을 산지라, 발길을 돌린다. 이번에는 <망상해수욕장 유실물 보관소>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샀다. 메인 행사장인 지지향으로 향하는 길 좌우로 피크닉처럼 자리를 차지한 가족들이 한가로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우리 내년에는 도시락을 좀 싸올까?, 돗자리도 깔고.. 천천히 둘러보면 좋잖아' 어느덧 채은이는 꿈나라 속이다.
잔디 한켠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가보니 누군가가 캐릭터를 그려주고 있다. 단돈 3천원에 캐릭터를 그릴 수 있는 기회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채은이의 캐리커쳐를 그렸다. 매년 올 때마다 뭐 하나를 해 가는 구나..
캐릭터를 그려준 작가님은 '소랭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분이다. 임신중이신지 배가 불룩한데 연신 미소를 지으면서 캐릭터 그리기에 열심이다. 조수 역할을 하는 신랑과 함께인데 여간 사이가 좋아 보이는게 아니다. 채은이가 예뻤는지 바나나 하나를 준다.
이 그림은 채은이가 좋아하는 책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의 삽화다.
지지향으로 돌아와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채은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지지향의 북카페는 24시간 오픈하는 <지혜의 샘>으로 탈바꿈 했는데 온 사방에 있는 책들을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카페다. 앤티크한 분위기가 사라진 건 좀 아쉽다.
지지향에서 몇몇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여행의 장소를 스케치로 남긴 전시회가 너무 예쁘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게 좀 아쉬운데, 에펠탑 그림이 참 가지고 싶다. 그 외에도 메인 전시인 <7인 7색의 고서적>도 무료로 열리고 있다. 고서적 전시에서는 7명의 북 콜렉터가 내놓은 희귀서적들이 있었는데 대동여지도가 인상 깊다.
나에게 작은 꿈이 있다면 천정까지 들어찬 저 책장. 저 책장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나무 칸칸이 들어차 있는 저 책들이 무지하게 욕심난다. 그래서, 출판단지가 좋다.
매년 올 때마나 이곳에서 와이프의 사진을 찍어준다. '우리 잘 살고 있어'라는 일종의 의식이랄까.
매번 하얗게 날라버리는 사진을 보면 나도 참 사진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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