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구석구석 방랑가족(여행, 맛집)

[해남 땅끝마을] 아무것도 없지만, 땅끝은 땅끝이다.

슬슬살살 2014. 11. 26. 23:19

◆ 땅끝, 평범하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무려 여섯시간이나 걸려서야 땅끝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고도 먼 곳.

도착했을 때에는 짧아진 겨울해가 슬슬 기울어 가서 이렇다 할 관광을 하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땅끝 모노레일을 타고 진정한 땅끝에 다녀올 정도의 시간은 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출발.. 

 

 

겨울이라 비수기였는데도 모노레일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관광객들이 술냄새를 잔뜩 풍겨온다.

문득 이런 곳들을 젊을 때 다녀버리면 나이들어선 어딜가지?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채은이는 모노레일이 신기하지도 않은지 멀뚱멀뚱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끝날줄 알았더니만 내려서 산을 하나 내려가야 땅끝이 나온단다.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낙서가 심상치 않다.

0.4km 거리라고 하는데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쉽지 않은 코스다. 15kg의 채은이를 안고 내려가는 일도 내려가는 일이지만 올라올 일이 더 걱정이다.

일단 무조건 업고 내려가 본다.  

 

 

땅끝탑에 내려 서면 약간의 허무함이 밀려온다. 탑의 위치가 바다를 향하고 있지 않아 사진을 찍어도 멋이 없고, 저변 풍광도 끝이라는 느낌이 없다. 깍아질 듯한 절벽이 예술이었던 부산이나 남해에 비하면 소박한 배경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이곳은 땅끝이다. 땅끝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평범한 이 곳의 가치를 몇배나 불려준다. 어쨌거나 우리는 땅끝에 와 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오르막 길을 끊임없이 오른다.

무릎은 아파오고 팔은 저리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어두워질까 마음은 조급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단에도 끝은 나오고 한동안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채은이를 업었던 팔뚝을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멍까지 들었더라..

 

단언컨데, 땅끝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땅끝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우리 숙소는 땅끝마을서 2km떨어진 해남땅끝리조트. 깨끗한 방에 씨뷰가 예술인 곳이지만 주변에 먹거리가 아무것도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저녁은 먹어야 하기에 간단하게 짐을 풀고 땅끝마을로 향한다. 관광지 답게 각종 음식점이 즐비한데 대부분이 횟집인지라 쉽게 발걸음하지 못한다.

개중 마을 입구에 있는 곳이 가장 커 보여 무턱대고 들어갔다. 땅끝바다횟집이란 곳이다.

 

 

1만2천원짜리 회덥밥을 시켰더니 회가 한웅큼 올라간 밥이 나온다. 가격은 비싸지만 비싼값을 하는 곳이다. 밑반찬도 꽤나 맛있다.

 

 

채은이가 먹을만한게 없어 전복죽을 시켰더니 전복국과 같은 형태의 죽이 나온다. 일반적인 죽보다는 묽은 편인데 여기 역시 전복이 골뱅이 들어있듯이 들어간다. 채은이에게 한입 먹였더니 폭풍흡입!!

 

 

차 때문에 관광지에서 술은 못먹고 숙소로 안주거리를 사간다.

저녁을 해결했던 땅끝횟집에 삼치 메뉴가 있어 한마리를 주문했다. 일전 제주도에서 한번 먹어본 기억으론 참치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여기서 먹으니 너무 녹아서 흐물흐물하다. 김과 장으로 먹었지만 뭔가 신선한 느낌이 나질 않는다. 와이프는 몇점 먹더니 그만 먹고 통닭을 시킨다. 워낙에 회를 좋아하는 내가 이 삼치회를 다 먹었다가 다음날 장염에 걸렸다.

 

◆ 두륜산 케이블카

 

사실 해남 최대의 관광자원이 바로 이 두륜산이다. 매15분마다 다니는 이 케이블카는 조금만 늦어도 헛걸음을 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땅끝 모노레일과 비슷하지만, 훨씬 노선도 길고(1.6km, 약 8분 소요) 경치도 월등히 좋다.

 

 

장염에 걸린 배를 잡고 케이블카를 오르니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저 아래 펼쳐진다. 남산에서처럼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땅끝 기념비에 비하면 훨신 오르기 편한 곳이다. 장염만 아니었어도 경치를 더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정상에 오르니 장관이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도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여기는 해발 638m. 두륜산 정상, 고계봉이다.

 

 

정상에서 부탁부탁을 해서 간신히 가족 사진 한장을 찍었다. 사실 이 사진만 봐서는 북한산인지, 남산인지, 땅끝인지 모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사진을 찍어 남기는 건 지나갈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16일 오전 우리 가족은 두륜산 정상에 있었다.

 

◆ 두륜산 주변의 웰빙 음식촌

두륜산을 내려오면 1km도 채 못가서 웰빙음식촌이라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깔끔한 외양이지만 오전 시간대에는 문을 여는 집이 거의 없다.

아니, 정확히는 문을 열었어도 몇명인지 물어본 후 영업을 안한다고 하더라.. 진짜 안하는걸까? 아니면 단체를 받기 위해 가족 관광객을 거부하는 걸까..

아무튼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다행히 기송정이라는 식당에서 우리를 받아 주었다. 어서 오시라는 말 대신 몇명이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어떠랴. 일단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게 중요하지.

바지락 비빔밥과 산채비빔밥을 한개씩 시켰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찬들이 모두 맛있다. 돌솥에 나오는 밥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바지락도 맛있다. 이곳의 식당들은 각각 독특한 고유의 메뉴들이 있다고 하니 해남에 갈일이 있다면 여기에서 식사를 해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