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어설픈 번역과 감각없는 기획의 콜라보

슬슬살살 2014. 12. 16. 22:10

고전 명작이 어설픈 번역자와 감각없는 기획자를 만났을 때 벌어지는 참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책. 스탕달은 <적과 흑>을 내기 8년 전 <연애론>을 먼저 펴냈다. 사랑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인데 작가의 가치관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훌륭한 책이다. 그런데 별도의 기획의도를 가지고 새로이 편집을 한 삼성출판사판은 질이 너무 떨어진다. 원문을 발췌번역하여 윤문을 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원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삭제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목차마저도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재배열했다고 하니 원작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진 셈이다. 각 장의 순서가 불규칙한 건 물론이고, 원문 제목마저도 편집자가 새로이 썼다 하니 이름만 스탕달이지 완전한 새책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편집인의 의도야 어쨌건 전체적인 맥락이 엉망진창으로 읽히는 걸 보면, 실패한 기획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새롭게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편집자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라고 되어 있지만, 앞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연애론>을 읽을 사람이라면 절대로 삼성출판사판은 보지 말기를 바란다.

 

어쨌든,
이 책은 스탕달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연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스탕달과 주변의 이러저러한 사례를 들어 사랑의 위대함과 연애에 대처하는 방법 따위인데, 현대인이 볼 때는 유치한 이야기다. 물론 당시의 자유로운 시대상이나, 정열적인 연애에는 관심이 가지만 너무나 일방적이고 단정적인 스탕달의 논조가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중언부언 반복하는 것도 불편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깍지를 두고 스탕달은 이렇게 말한다.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 깊은 곳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두고 서너 달쯤 뒤에 꺼내보면 나뭇가지가 온통 반짝이는 소금 결정들로 뒤덮여 아름답게 빛난다. 소금 결정이 원래의 평범한 나뭇가지를 가려 다이아몬드 가지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말은 아름답지만 알맹이는 없는 글이다. 당시에는 몰라도 현대인이라면 '콩깍지가 씌운다'라고 간결하게 표현할 내용인 거다.

 

사랑이 태어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결정작용'이 시작된다.


스탕달은 사랑이 탄생해서 성장하기까지를 일곱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이 '결정작용'이 일곱단계 중 핵심이 되는 단계이다. 결정작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콩깍지가 씌우는' 행위다. 사랑에는 이 결정작용이 두 번 찾아온다. 첫번째 결정작용 뒤, 의심의 단계를 거쳐 두번째 결정작용이 일어나며 여기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접어든다. 의심 단계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이 남자(여자)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심과 전전긍긍이 두번째 결정작용을 불러 일으키며 이후의 사랑은 영원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래서 어쩌냐는 질문이 계속 남아있기는 하다.


 


스탕달의 연애론

저자
스탕달 지음
출판사
삼성출판사 | 2007-08-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낙서없는 상급 / 277쪽 | 126*186mm | ISB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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