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 한복판의 천재 소녀작가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였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수많은 기록이 있지만 '안네 프랑크'의 이 일기와 비견할 만한 기록은 없다. 고작 14살의 소녀가 은신처에 숨어살면서 기록한 3년분의 일기에 불과하지만, 그 어느 소설보다도 역동적이고,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생생하다. 우리는 글재주 많은 이 소녀의 말상대가 되어서 2차대전의 한복판에 떨어질 수 있다. 어린 시절 문고판으로 읽으면서 펑펑 운 기억이 있는데 이번 완전판은 95년에야 발간 된 버전이다. 그 이전까지는 나치 치하의 유대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완전판의 경우에는 휴머니티가 훨씬 더해졌다. 다락방에 숨어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안네의 성과 사랑까지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페미니스트의 모습까지 보인다.
◆ 보다 생생한 2년의 기록
이 책은 일기다. 이렇게 훔쳐봐서는 안될 14살 사춘기 소녀의 일기지만, 슬프게도 이 일기는 나치에 저항한 저항문학으로 분류되어 전 세계인이 읽고 있다. 1942년 6월에 시작한 일기는 한달만에 나치의 탄압을 피한 안네의 가족과 함께 은신처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이곳에서 3년간 숨어살면서 그때그때의 기록을 일기 안에 남기는데, 가족의 이야기를 포함해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살면서 생기는 갈등, 비참함, 배고픔, 외로움, 고독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나치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비추지는 않지만, 오히려 14살 소녀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부모의 노력이 간접적으로 읽혀져 더욱 슬프다. 완전판에는 함께 산 페터와의 사랑이 담겨있으며 자기 몸에 대한 관찰, 성교육 등도 일부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돌이켜 보며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나빴는지 반성해 본다면 그만큼 숭고하고,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이것은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용도 들지 않고 실제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맑은 양심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발견하길 바랍니다.
안네의 매일매일은 갇혀진 삶의 고통이었으며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함께 사는 이들에 대한 불평도 있고 언니를 편애하는 부모에 대한 투정도 있다. 안네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페이지가 줄어나갈 때마다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나온다. 특히 마지막 잡혀가기 직전에는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늬앙스의 글이 담겨져 있더 읽는이를 한없이 비탄에 잠기게 한다. 심지어 사진까지 남아 있어 일기를 다 읽은 후에는 안네가 친구처럼 느껴진다.
혼란과 끔찍한 불행, 죽음의 바탕 위에서는 희망을 쌓아 올릴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가 서서히 황폐되어 가는 것을 나는 직접 지켜보고 있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천둥소리를, 우리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우레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몇백만 사람들의 괴로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면 다시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지금의 잔악무도한 행위들이 사라지고 평화롭고 고요한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말이에요.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 안네의 마지막은?
3년을 성공적으로 숨어 산 안네의 가족은 1944년 8월 4일 독일군에 체포된다. 안네의 가족과 함께 살던 페터의 아버지는 9월6일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보내졌다. 페터의 어머니는 6개월 가량 수용소 생활을 하다 사망했으며 안네가 사랑했던 페터는 온갖 고초에서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수용소에서 숨진다. 수용서 해방 3일 전에..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아우슈비츠에 간지 두달만에 티푸스로 사망했다. 안타까운건 안네 자매 사망 1개월 후 수용소가 해방된다는 사실이다. 안네의 어머니 역시 1945년 1월에 사망했다. 유일하게 안네의 아버지만이 살아남았으며 해방 이후 안네의 일기를 펴낸다. 글로는 간단하게 적은 뒷 이야기이지만, 일기 속에서 3년을 함께한 사람들이 죽은 느낌이다.
PS. 456페이지에 안네의 가족을 가르켜 '죄수'라고 칭하고 있는데 '희생자'나 다른 말로 대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대인은 죄수여서 학살당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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