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으로의 출장이다. 1시간 30분의 비행. 잠자기 보다는 영화 딱 한편 보기 적당한 시간이다.1 패널을 확인하니 <수상한 그녀>가 눈에 띈다. 올해 5월 백상예술대상에서 심은경을 오열하게 만든 <수상한 그녀>. 와이프가 한국식 코미디를 별로 안좋아 해서 볼 기회는 지금 뿐일 거라는 생각에 채널을 맞췄다.
<수상한 그녀>라는 평범한 제목의 이 영화는 포스터와 예고편 만으로도 전체 줄거리가 한 눈에 그려진다. "음, 나문희가 젊어져서 심은경이 되는 군" 여기에서 파생되는 에피소드 역시 추측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시절에 못 이룬 꿈의 실현, 젊은 청년(?)들의 대쉬, 노인의 성향이 불러오는 개그 요소들... 어느하나 '예상밖'의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제시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안일하고 휙~ 잊혀질만한~ 영화가 되어야 하는데... 무려 8백6십만이다. 역대 17위의 엄청난 성적. <과속스캔들>과 <써니>를 앞섰다. 심지어 함께 개봉했던 작품은 <겨울왕국>이었다!!
꽃다운 젊은 시절을 고생고생하다 아들을 교수까지 키워놓고 이제 칠순을 맞이한 오말순(나문희 분) 여사. 노인들을 위한 실버카페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육체적인 늙음은 어찌할 수 없는 법. 초반부 오말순의 아들인 반현철(성동일 분)이 강의하는 모습에서 노인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시선을 알 수 있다.2 "냄새난다", "추하다" 등등. 오말순 여사가 틀니를 끼는 모습에서 불쾌한 느낌을 받으면서 나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매일같이 오말순의 잔소리를 들어주던 며느리가 쓰러지자, 가족들은 오말순 여사를 요양원으로 보내려 하는 회의를 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오말순 여사는 길거리를 방황하다 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게 된다. 이때를 계기로 20대로 돌아간 오말순. 심은경의 출동이다.
아 긍께 이제 내차례여~
엄청나다. 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 건 90%가 심은경의 공이다. 백상예술대상의 여우주연상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심은경의 나이를 알 수 없었다. 진짜 나문희가 어려졌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이건 CG의 엄청남과는 다른 느낌이다. 젊은 여자를 90분동안 보면서 나이든 할머니로 생각하고 본다는게.. 자연스레 코미디는 실감나게 와닿는다.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젊어진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왜 아닐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의 코미디는 심은경과 결함해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중간 중간 오말순 할머니의 젊은 시절 고생들은 비행기 안에서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고 더욱 캐릭터에 몰입시켰다. 관객은 어느덧 오말순을 코앞에서 보고 있게 됐다.
젊은 시절 가수를 꿈꿨던 오말순 여사가 젊어졌으니 그 꿈을 이뤄줄 차례다. 손자인 반지하와 함께 그룹을 결성. 70년의 한을 품은 목소리로 일약 전국구급 스타가 된다. 이때 나오는 OST가 '나성에 가면', '하얀나비', '한번 더'다. 리메이크작인 앞의 두곡은 심은경의 청아한 목소리와 엄청난 음향 믹싱 기술, 익숙한 멜로디로 듣는이의 심장을 뛰게 한다. 하긴, 영화의 소재가 된 노래 치고 두근거리지 않는 노래가 있던가. 안타까운 건 오리지널 곡이자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번 더'는 페퍼톤즈의 곡을 표절했음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태. 옥의 티다.
결국 오두리는 오말순 여사로 되돌아 오지만 아쉬워 하기 보다는 "정말 좋은 꿈을 꿨어"라며 현실에 순응한다. 젊어지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늙음이 추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과거를 아쉬워 하게 마련이지만 결국 아쉬움은 가진 채 늙어갈 뿐이다. 꿈을 이뤄보고 다시 돌아온 오말순 여사는 결코 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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