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먹은 쥐 이야기를 아는가. 함부로 버린 손톱을 쥐가 주워먹으면 손톱주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뀌고 원래 주인을 내쫒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네 할머니들은 손톱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영화 <숨바꼭질>은 손톱을 먹은 쥐의 손톱을 다시 먹고자 하는 또다른 쥐의 이야기이다.
성수(손현주)는 결벽증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럴싸한 커피숍의 사장이기도 하고 고급 아파트에서 아내(전미선)과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성공한' 자산가다. 영화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재산이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날 성수는 형 성철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수년 간 연락이 두절됐던 성철의 아파트는 허름하기 그지 없다. 형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하던 중에 성수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이상한 표식을 보게 된다.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성별을 기록해 놓은 암호. 누가, 왜 이런 표식을 했을까. 왜 형의 집 앞에는 다른 집과 다른 표시가 되어 있는 걸까.
여기부터 스포일러
단순히 도시괴담을 영화화 한 것 같지만 나름 심오한 상징이 곳곳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성수는 입양된 아이였다. 부잣집에 입양된 성수는 어린 시절, 성철이 성폭행범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형을 내쫒은 적이 있다. 입양아가 친아들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인생이 꼬여버린 성철은 성범죄자에 거리를 전전하다 실종되어 버린다. 성철의 실종 이면에는 또다른 인생이 있다. 성철의 아파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주희(문정희)네 단촐한 식구다. 성철을 죽인 주희네는 살 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여자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집주인을 죽이고 차지한 곳이고 성철 역시 같은 이유로 죽였다. 성수의 고급 아파트를 보고는 그 집을 차지할 생각을 가진다.
영화 초반부 어수룩하고 정신 없는 가난한 싱글맘 정도로 비춰진 주희지만, 감이 빠른 이라면 금세 주희의 수상함을 느꼈을거다. 아무튼 주희네는 아파트 주인을 살해하고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가족이다. 상류의 삶을 동경하면서, 자신의 없음을 한탄하고,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면서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여기서 주희의 딸 평화가 의미심장하다. 영화 내내 안대를 하고 있어 기괴스러운 느낌을 잘 전해 주는데 평범함의 공포를 잘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어테이프에 나온 문장을 따라 하면서 상류층의 소녀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는 모습, 성수의 핸드폰에 댈린 열쇠고리를 자기 꺼라며 악을 쓰는 모습, 쓰러진 성수의 아내의 옆을 지나며 천연덕 스럽게 '이제 나가도 돼?'하고 묻는 모습 하나하나가 그 어떤 공포보다 섬뜩했다.
영화 중반까지의 초점은 성수의 형, 성철에 맞춰져 있다. 성철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성철에게 하는 복수로 비춰진 것이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비춰진 진실은 '집'에 대한 주희의 욕망이었다.
성수는 성철의 자리를 빼앗았으며 주희는 성수의 집을 빼앗고자 한다. 위치와 집에 관한 현대인의 욕망. 낭자한 선혈보다 무시무시하다.
쥐가 손톱을 먹는 이유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다. 되고 싶기에 먹는 것이지, 우연히 먹고 사람이 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꼭 손톱을 잃어버리는 인간은 탐욕적이기 마련이다. 전래동화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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