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영혼의 미술관]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탐구

슬슬살살 2015. 5. 11. 22:18

한 페이지 건너 한장 씩 수록된 그림. 올 컬러, A4사이즈의 큰 도판. 미술서적이라 생각되기 쉬운 제목의 책이지만 이 책은 철학서다. 같은 미술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양미술사>와는 정 반대편에 서 있다. 여기 수록된 수많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글이 있는게 아니라 글의 이해를 위해 그림이 존재한다. 미술을 바라보는 보통의 시선을 원했던 이라면 이 책을 선택하지 말 것.

 

이 책의 목적은 명확하다.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다시 말하면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이 230여페이지에 걸쳐져 있다. 가장 먼저 예술의 기능은 7가지가 있다. 어떤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감상자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슬픔을 보여주기 위해 기능한다. 또 인간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기능도 가지고 있다. 가령, 도심 속에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아름다운 전원을 그린 그림은 위안이 되면서 감상자를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 현대 미술사조를 공부하고 감상하기 위한 자세를 가지는 것보다 내게 부족한 것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그림을 살피는 공부가 훨씬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투영해보는 명상의 기능을 제공하기도 하며 자기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의 개념에서 예술을 대한다면 피카소의 작품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혹은 불쾌한 지옥도 같은 그림 역시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예술은 감상 그 자체의 기능을 한다. 일상속의 한 장면을 집중해서 그림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재스퍼 존스가 청동으로 맥주캔을 만들고 나서야 우리가 맥주캔을 진지하게 볼 수 있었던 것 처럼...

 

보통은 이러한 방법론에 뒤이어 4개의 큰 주제를 제시한다. 사랑과 자연, 돈과 정치다. 그 어느 장에서도 그림에 대한 소개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랑에 대해, 자연에 대해, 돈과 정치를 말하면서 예술이 이 분야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위 그림은 제임스 애벗 맥닐의 <안개>라는 작품이다. 제임스가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사람들은 런던에 안개가 있음을 깨달았고 그 안개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엔 안개가 없었다."라고.. 이렇게 모든 예술은 인간의 본성에 작용하기 마련이고, 예술가는 특정한 대상을 표현함으로서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이 방식의 감상은 특별한 공부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건 솔직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 보고 예술가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 뿐이다. 자연, 돈 역시 예술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이게 바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보통이 마지막 챕터에 정치를 넣은 것은 예술이 인간의 변화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파트에서는 그림보다 건축과 조형을 많이 다룬다. 정확히는 예술 취향의 탄생과 그것이 한 명의 인간과 그를 둘러싼 문화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좋은 예술은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소속감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다 나은 영향력을 가진 예술을 위해 예술은 보다 인류 속으로 파고 들 필요가 있으며 사회는 예술가에게 적극적으로 주제를 제시함으로서 사회 발전을 위한 예술품을 얻어 낼 수도 있다. 심지어 가상의 의뢰 리스트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작품을 의뢰한다.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우리를 시간에 메인 존재로 묘사하고, 그 안에 함축된 모든 의미를 드러낸다. 연작은 인생의 시기별로 나타나는 각기 다른 특징을 보여줄 수 있다. 예를들어 '사춘기의 열두가지 슬픔','중년의 갈망'등. 이 예술품은 우리가 현재 속한 시기가 아닌 다른 시기에 자신을 옮겨 놓고 상상할 때 겪게 되는 특별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여러 단계로 어우러진 인생을 전체로 보는 감각을 길러 줄 것이다.

 

예술에 대한 보통의 이상론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예술을 감상할 때 좋은 지표점이 될 것은 확실하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너무 윤택해져서 결국 예술이 필요없게 하기 위함이다.

 

PS. 알랭 드 보통과 존 암스트롱의 공저로 되어 있다. 보통의 메인을 쓴 것은 맞으며 존 암스트롱과 심도깊은 대담을 통해 내용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저자
존 암스트롱,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9-23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인간의 영혼을 보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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