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꽤나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엘러리 퀸이 두명의 소설가가 함께 쓴 필명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X의 비극>같은 비극 시리즈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번역본이 국내에 나온적이 없기 때문이랄까. 사실 퀸 같은 두뇌파 스타일의 탐정이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추리소설 입문자에게 퀸의 시리즈는 꼭 접해볼 필요가 있다. 엘러리 퀸은 퀸이 가진 정보는 독자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반드시 지키기 때문인데, 거꾸로 얘기하면 독자도 동일한 조건에서 추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한마디로 머리를 쓰면서 추리를 해 나가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게 엘러리 퀸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요즘 추리물에 비해서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쉬운 서사가 쉽게 읽힌다는 점도 한 몫 한다.
10여분이면 읽을 분량의 짧은 단편인 <세명의 미망인>에서 미망인의 이름은 중요치 않다. 사치스러운 두 자매 미망인이 나오고 그녀들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새엄마 후드 부인 역시 미망인이 된다. 미망인이라는 표현이 고풍스럽다. 아무튼 상속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후드 부인이 독살의 위협을 받게 되다가 죽게 되는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녀가 독살당했는지가 이 추리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방식이 나오는데 의외의 인물, 너무나 당연했던 인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던 행동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결과물은 읽는 이에게 "내가 왜 그걸 몰랐지" 하는 자괴감을 일으키게 한다. 궂이 결론을 얘기하자면 범인은 후드부인을 진찰했던 의사였으며 체온계1를 통해 독을 주입했다. 아플 때마다 진찰을 받아야 하니 너무나 손쉽게 독을 먹일 수 있었던 것이다.
- 과거에는 체온계를 입에 무는 방식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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