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쪽이 넘어가는 긴 글을 읽으면서 독서인생 처음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문장 그 자체가 웅장하다고 느낀 것. 슬픈 글, 무서운 글, 재밌는 글 모두 읽어 봤고 저자가 의도한 감정을 느껴 보았지만 웅장함은 처음이었다. 대규모 전쟁의 묘사, 거대한 서사 같은 느낌이 아니라 <레미레자블>과 같은 뮤지컬 영화나 오페라를 볼 때의 숨가쁨을 고스란히 느꼈던 거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번역이라는 거름막을 통해 나온 문장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디킨즈가 의도했을 그 계획대로 번역을 해 낸 이은정 번역가의 엄청난 능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 전 후의 파리와 런던의 이야기이다. 감옥에 갇혔던 후유증으로 약간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마네트 박사를 그의 친 딸이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서 새 삶을 꾸려 나가는 박사와 그의 딸 루시. 루시는 프랑스를 떠나온 찰스 다네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격동의 시절. 한 가정이 이뤄지는 것도 쉽지 않은 시절이다. 파리를 탈출한 인간들이 런던에서 살아가갈 때, 프랑스는 그야말로 피와 살이 튀는 혁명 중이다. 바스티유는 공격 당했고 모든 농민들은 눈에 보이는 귀족들을 죽이고 압살한다. 특히나 기요틴에 대한 묘사가 일품인데 당시의 상황을 넘어서 공포와 광기어린 시대상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놀라자. 인간의 문장이 어찌 이럴 수 있는 건가.
숫돌은 손잡이가 두 개인데, 남자 두명이 각각 나눠잡고 미친듯이 돌렸다. 그럴 때면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머리칼이 뒤로 넘어가 세상에서 가장 사납게 변장한 최악의 야만스러운 얼굴보다도 더 섬뜩하고 잔인해 보였다. 거짓 눈썹과 거짓 수염이 연신 휘날렸고 오싹한 얼굴은 온통 피와 땀투성이었으며 소리를 지를 때마다 흉측하게 뒤틀렸고, 짐승 같은 광기와 수면 부족으로 충혈 된 눈은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았다. 이 악한들이 빙글빙글 돌면 젖어서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눈을 가렸다가 목 뒤로 넘어가곤 했다.
다시 읽어봐도 이보다 기요틴을 잘 설명할 수는 없다. 거대한 칼날에 달라붙은 잘린 머리통. 피범벅이 된 주변. 인간성을 상실한 채 기계적으로 목을 쳐 내려가는 시민들의 광기. 이런 문장이 500페이지 이어지고 읽는 이는 스트레스로 암에 걸릴 지경이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광포하게, 거침없이, 숨 쉴 틈 없이, 촘촘한 문장은 진짜 처음이다. 물론 글이 쓰여진 시기와 읽는 시대와의 간극이 넓어 배경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도 많다. 때문에 중반까지는 읽는게 썩 편하지만은 않다. 중반 이후에 인물간 관계, 시대적 배경이 어느정도 이해가 된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혁명의 중심부에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루시와 다네이, 마네트 박사가 런던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도시 건너편의 또다른 도시에는 술집 주인 드파르주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국 시민'들은 기요틴 위에 모든 귀족들을 올리고 있다. 어린시절 귀족에게 강간당하고 죽은 언니를 둔 드파르주 부인이 시민군의 선봉에 있다. 원래 프랑스의 귀족이었던 다네이가 프랑스에 귀국했다 수감되면서 소설은 중반 능선을 넘는다. 다네이를 구하기 위한 마네트 가족의 노력, 광기에 가득찬 복수를 꿈꾸는 드파르주와 그의 부인.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신은 누구의 손을 들 것인가.
<두 도시 이야기>가 잘 쓰여진 소설 이상인 이유는 역사적인 사실을 전하는 르포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소요소에 배치된 시대상황을 알리는 설정들은 읽는 이를 오롯이 혁명의 한 가운데로 밀어넣는 장치 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역사가 역할도 겸하고 있다. <도시의 후작나리>와 <농촌 후작나리> 챕터가 대표적인 예다.
먼저 첫 번째 하인이 성스러운 면전으로 초콜릿 단지를 가지고 갔다. 그러면 두 번째 하인이 자그마한 도구로 초콜릿을 저어 거품을 일으켰다. 그때 세번째 하인은 나리가 좋아하는 냅킨을 들고 곁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금시계를 찬) 하인이 초콜릿을 따랐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렇게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 문장에는 사치스러움, 계급사회에 대한 고발과 조롱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바로 뒷 챕터에서 마차에 치어 개처럼 죽어가는 굶주린 농민들이 나오면서 혁명 전야의 대비를 고조시킨다.
감옥에 갇힌 다네이를 구출한 건 마네트 가족이 아닌 카턴이다. 영국에서 다네이가 스파이 노릇을 한 혐의로 기소당했을 때 재치있는 표현으로 다네이의 무죄를 입증한 변호사 보조이다. 냉혈한에 어둠속에서 일하는 느낌을 많이 줬었는데 마네트 루시양을 사랑했던 신사이기도 하다. 본인이 다네이와 닮았던 점을 이용해 다네이 대신 형장으로 끌려간다. 이 결말에 이르면 디킨즈의 안배에 혀가 내둘러진다. 둘이 닮았다는 복선이 시작 부분에 중요한 대목에서 등장하는데도 끝가지 눈치채기 어렵게 이야기를 끌고가는데다 곳곳에 쓰여진 대목하나 소재하나 문장하나가 허툰게 없다.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그곳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쓰여졌다는 느낌이다. 리뷰를 쓰다 보니 신이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셰익스피어 이후의 최고 문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윗 레벨이 아닌가 싶다. 고전은 고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도시 이야기>는 불멸일 듯 싶다. 물론 여기에는 펭귄문고의 디테일한 번역, 주석, 편집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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