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전원 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사 온 금슬좋은 노부부. 오후 네시에 인사를 온 옆집의 의사 팔라메드. 평범한 일상이다. 문제는 이 의사가 이후에도 매일 오후 네시에 찾아 온다는 것.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매일 두 시간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 대답만 할 뿐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일이 매일같이 지속되면서 노부부의 일상은 망가진다. 매일 매일 불안함에 떨면서 무례한 손님을 기다린다. 알 수 없는 사건이 전개 되면서 초점은 '왜'에 맞춰 진다. '왜' 이 노부부는 당하고만 있는 걸까. '왜' 이 남자는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첫 번째 질문의 답. 이 노부부가 매우 교양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의 답은 어떨까. 아쉽지만 소설에서는 명확한 결말이 나지 않는다. 끝까지 에밀이 보고 생각하는 세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에밀의 추측 이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진실을 들려 줄 수 있는 팔라메드는 '네'와 '아니오'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팔라메드의 방문을 어떻게든 막고 싶은 노부부는 정식으로 팔라메드의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여기서 팔라메드의 아내가 등장하는데 엄청나게 뚱뚱한데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책의 표현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지 잠깐 외계인인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아무튼 인간이라 보기 힘든 정도 수준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팔라메드가 불쌍해 지는 순간이다. 여기서 급작스런 전개. 더이상 방문하지 말 것을 요구받은 팔라메드가 자살을 기도하고 에밀이 겨우 구해 낸다. 팔라메드가 자살하려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던 에밀은 드디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에밀은 팔라메드를 살해한다. 아니, 구원한 걸까.
이 간결하고 단순한 소설은 절대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간결한데다 빠르고,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 시킨다. 물론 <적의 화장법>처럼 엽기적인 반전이 있는 건 아지니만 충격적인 결말이긴 하다. 에밀이 살인을 저지르다니.. 심지어 그걸 잘 했다고 생각하다니..
선량하고 아름다운 에밀 부부와 추한 팔라메드 부부. 어느쪽이 결말일까. 남겨진 팔라메드 부인? 아니면 살인자로 전락한 에밀?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살인자로 살아가는 에밀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사연이 많다 하더라도 밖은 추한 팔라메드 부인, 혹은 무례한 팔라메드 뿐이니까.
이 소설은 나의 관습을 깨는 자에 대한 복수이자 이를 정당화 시키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교양이란 이름, 또는 다른 이름으로 수많은 관습으로 무장하고 있고 이걸 깨뜨리는 자를 증오한다. 분명 나와 다를 뿐인데 이를 인지하지 않으려 하고 상대를 비방하면서 결국 관습적이지 않은 상대를 살해한다. 죄책감 없이 내가 그를 구원했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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