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원래 중편 3개를 따로 냈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연작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1부 하구,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 3부 그해 겨울순인데 연결 된다기 보다는 조금씩 다른 주제를 보여준다 생각하면 된다. 시대인식 보다는 젊음과 고독, 가난, 나약함 등이 주 키워드다. 이것 때문에 '시대를 읽는 작가' 이미지를 못가지고 욕도 많이 먹고 있다. 염세적, 패배적인 분위기가 추욱 늘어트리기는 하지만 고독과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주옥같은 문장은 한글이 도대체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1부 하구
주인공은 이제 갓 성년이 된 '젊은이'이다. 대학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고향 강진(전남 강진이 아니다. 부산 인근에 있는 곳)으로 내려와 형의 사업을 돕는다. 모래를 퍼내는 3D일을 하지만 오히려 적응하고 안주한다. 이곳에서 각종 인물들을 만나면서 삶의 여러 모습을 보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병 요양중인 '별장집 남매'의 실상은 여동생의 몸을 팔아 병을 치료하는 남매였으며 고향 친구인 '서동호와 그 부친'은 빨갱이 전력을 숨기고 살아온 가족이었다. '최광탁과 박용칠'은 삶의 맨 밑바닥에서 그들만의 의리, 그들만의 도덕과 가치를 지키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세상의 부조리, 허울들을 처음 만나는 젊음이다.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
눈에 익은 예쁜 문장이 이 작품의 제목이지만 예쁜 삶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1960년대의 대학생활을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의 화자는 운동권도 부르조아도 아니다. 철저하게 사건과 떨어져 세상을 관찰하는 관조자이며 개똥철학으로 티격태격하는 '하가'와 '김형'의 사이를 중재하고 들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완전한 셀프 제3자.
스스로를 '비꼬인 자의식'이라 표현할 정도로 찌질한게 <우리 기쁜 젊은 날>의 화자다. 국문학과를 다니지만 가난으로 비뚤어진 성격을 가진 영훈이 부유한 여자친구 혜연을 만나면서 더 비뚤어지는 이야기.
허망함과 고독을 넘어서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망가져 있다. 그야말로 '어둠의 다크니스'. 중2병의 향연이다. 가난은 눈물겨울 정도지만 외상 술에 쩔어사는 호기로움, '김형', '하가'와의 개똥논쟁은 우스우면서도 귀엽다. 여기서도 역시나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메세지는 완전히 배제한다.
'김형'의 죽음과 함께 3인방의 젊음은 마무리된다. 그래도 그때를 '기쁜 젊은날'로 기억하는 걸 보면 자의식은 제자리를 찾았나보다.
3부.그해 겨울
<젊은 날의 초상>에서의 '젊음'은 항상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념적이지도 않다. 항상 삶을 관조하고 염세적이며 패배에 쩔어 있다. 이번 편에서는 심지어 자살 여행까지 떠난다. 여행 도중 배신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목적지인 바다에 도달했을 때 실패한 노인을 보고 영훈 역시 자살을 포기한다. 곁가지 이야기들이 많아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3부작 중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글이다. 글만 읽고도 실제로 추워지는 걸 겪고 나면 이문열의 문장이 존경스러워진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후 네시] 내 관습을 깨는 자에 대한 복수 (0) | 2015.11.23 |
---|---|
[들소] 영원한 건 예술 뿐. 예술 앞에서는 옳고 그름 조차 의미가 없다. (0) | 2015.11.20 |
[살인자의 기억법] 악인도 늙는다. 살인자도, 기억도 (0) | 2015.11.15 |
[책 속의 책] 차라리 전화번호부를 읽자 (0) | 2015.11.12 |
[제국의 미래] 관용과 불관용 사이에 선 미국 (0) | 2015.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