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는데 인색한 이문열이지만, <들소>에서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가감없이 그리고 있다. 다만, 공유경제에서 시장경제로, 평등한 부족사회에서 군장사회로 넘어가는 그 격변의 시기에 이문열이 그려낸 주인공은 관조자의 위치에 머물 뿐이다. 세상의 변화와 자신은 상관 없다는 듯 예술적 혼을 불태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이문열은 세상의 변화를 뛰어넘는 예술의 영속성을 말한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그림이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아 숨 쉴 것같은 이 소를 그린 남자에 대한 상상이다. 신석기 시대의 어느 수렵 부족. 이들은 소를 사냥해서 생활하는 부족사회다. 남성 중심 사회지만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용맹한 자를 우대하지만, 부족한 자를 굶기지 않는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보이는 분배 규칙을 가지고 있고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자신의 몫을 먹는다. 사유물의 개념은 없으며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재화를 소비한다. 사냥보다 조각을 좋아하는 화자는 영예로운 용사의 역할 대신에 '손의 동굴'에서 조각과 그림을 그려 용사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부족에 변화가 생긴 건 '뱀눈'이 새 지도자가 되고 나서다. 그는 부족을 장악하고 농경민족의 모습을 따라한다. '땅'이라는 소유물은 일정한 양식을 제공함으로서 풍요를 보장했지만 영토, 병사, 사유의 개념이 등장한다. 옆 부족을 사냥해 영토를 넓히거나 지키기 위해 병사가 필요하게 되고 병사를 부양하기 위해 어린아이, 노인들이 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 일한자와 누리는 자가 다른 현상이 발생하고 지배계급이 등장한다. 더 열심히 일을 해도 모두가 굶고 일부만이 부를 누리는 사회. 안전과 풍요라는 허울 뒤에는 불평등과 종속된 자유라는 댓가가 존재한다. 화자는 눈 앞의 부를 위해 '뱀눈'에 유리한 그림을 그리고 동료 '큰 목소리'는 반대하다 처형 당한다.
'그'의 부족이 변해가는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소유라는 개념은 그의 부족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불평등은 행운이나 비열한 수단, 탈취에서 출발한다는 개념은 현대에서 정설이다. 예를 들어 A가 B에 노동력을 제공할 때 B에게 노동력의 대가를 정확히 지불한다면 B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B가 노동력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A의 노동력을 탈취하기 때문에 빈부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이게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다. 진정한 시장사회주의에서라면 A는 B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동등하게 분배 받아야 한다.
결국 그의 부족은 계급으로 이루어진 군장 사회가 되고 대다수의 부족원들은 노예처럼 살아가게 된다. 노인과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여성은 이웃부족으로 팔려간다. '뱀눈'은 이웃부족과 결혼해서 정략적인 안정을 찾지만 대다수의 동료들은 가난한 삶을 면치 못한다. 그런 모습에 일말의 자책감을 갖지만 사회적인 변혁 대신 자신만의 '소'를 그리는데에만 열중한다. 예술가로서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로부터 등돌리는 비겁함으로 비춰진다. 수천년이 지난 현대. '그'가 그린 소는 시대를 뛰어 넘어 현대에도 살아 남았다. '그'는 자신의 소를 잡았고, 영원한 예술을 남겼다. '그'가 '뱀눈'에 반대하고 사회의 변화에 저항했다 하더라도 필연적인 역사를 막지는 못했으리라. 그리고 인류는 훌륭한 예술품을 잃어야만 했을 꺼다. 그런데, 과연 그게 옳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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