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이 있다. <노인과 바다>, <톰 소여의 모험>, <15소년 표류기>,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소설들. 어린시절 문고판으로 접하고는 읽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거다. 일부러 찾아 읽지 않으면 다시 접할 기회가 없어진다. '코니 윌린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고는 마크 트웨인이 읽고 싶어졌다. 덕분에 <왕자와 거지>를 찾아 읽게 됐다.
하느님께서 두 사람을 그렇게 똑같게 창조하신다는 건, 쓸데없는 반복으로 오히려 기적을 값싸게 만드는 일이거든.
얼굴이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우연찮게 신분이 바뀌는 시놉의 원조가 <왕자와 거지>다. <데이브>도 <광해:왕이 된 남자>도 <왕자와 거지> 메타포를 변주 할 뿐, 원조는 여기다. <왕자와 거지>에서는 에드워드 6세와 거지가 바뀐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에드워드를 내세운건 아예 대놓고 까겠다는 트웨인의 고도의 전략이다. 물론 에드워드 6세는 나름 덕이 있는 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트웨인은 신분이 바뀐 거지와 왕자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인 해학을 마음껏 펼친다. 거지를 통해서 탄압받는 민중상을, 왕자를 통해서는 신기루처럼 부질없는 왕권을 보여주고 자신은 변사로 가장한 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는다.
거지 톰이 바라본 왕가의 옷입는 상황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양말 하나를 신기기 위해 고위 귀족 수십명의 손을 거쳐야 하는 모습은 조롱이다. 거지가 왕이 되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국가의 모습에서 왕권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를 비추고 비웃는다. 조롱과 비웃음이야 말로 마크 트웨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닌가.
마크 트웨인은 책 속에 또다른 이야기 하나를 담는다. 바로 동생 휴 핸든에게 속아 모든 것을 빼앗긴 마일스 핸든의 이야기다. 마일스 핸든은 동생인 휴 핸든에게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다. 게다가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모두 없고 일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왕자와 거지>가 똑같이 생긴 얼굴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핸든은 재산을 노린 이들이 고의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다. 우연스러운 모험과 고의적인 범죄를 동시에 보여 줌으로서 톰과 에드워드의 모험을 더 순수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마일스 핸든이 에드워드를 돞는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왕자와 거지>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톰 캔티는 한때 왕이었던 '왕의 피후견인'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올랐으며 에드워드는 선정을 펼치는 왕이 된다. 에드워드를 보호했던 떠돌이 기사 마일스 핸든은 왕 앞에서 앉을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받는다. 이걸 보면 마크 트웨인이 무조건적으로 조롱을 던진 건 아닌 듯 하다. 조롱 뒤의 해피엔딩에는 마크 트웨인의 주장이 담겨 있는데 그 첫번째가 보편적 교육이다. 톰 캔티는 거지지만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책을 많이 읽었다. 우연히 기회가 왔을 때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교육의 힘이다. 두번째는 위정자의 가능성이다. 귀족과 왕정에 조롱을 보내기는 하지만 가난한 백성을 이해하는 왕이 나왔을 때는 충분히 아름다운 국가가 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고난을 겪은 왕, 에드워드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정말이 아닌 건 거짓말이니 그건 정말일 수 밖에 없다는 모순은 허풍 가득한 그의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왕자와 거지>는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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