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벌어진 사회 지도층의 추악함을 배경으로 그에 대한 응징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다른 천만영화 <베테랑>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베테랑>에서는 응징의 주체가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회악의 구성원들이 주체가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그야말로 '내부자들'의 이야기다. 거꾸로 이야기 하면 그들 내부갈등이 없었다면 정의 구현은 커녕 그들이 의도한대로 세상이 굴러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무섭다. 게다가 다루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모두 현실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이라는 게 더 충격적.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인물들과 그 조력자들의 추악한 이면을 보여준다. 그것도 사실에 기반해서. 연예인 성접대, 높으신 분들의 별장섹스파티, 정치깡패, 돈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언론권력, 정경유착, 검찰 내부의 학연지연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 중에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대기업 총수의 뒷그늘에서 활동하는 깡패 안상구(이병헌)와 경찰 출신의 검사 우장훈(조승우)은 각각 이 구린내나는 조직 안에 포함된 내부자들. 안상구는 이강희와 호형호제 하면서 미래그룹의 뒷일을 돕고 조승우는 정치적 입김으로 유력 대선후보 장필우 의원(이경영)의 뒷조사를 맡는다. 모종의 일로 인해 각각 조직에서 '팽'당한 두 열혈 복수자들이 힘을 합치면서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베테랑>이 유아인의 독종연기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호쾌한 복수를 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했다면 <내부자들>에는 그런거 없다. 잔혹하게 손모가지가 잘려나가는가 하면 내부정보를 얻기 위해 성매매 현장에까지 잠입한다. 게다가 이 모든 정점에 있는 이강희 논설주간의 행보는 욕지기가 나올 지경. 대중을 개·돼지로 치부해 버리는 그의 모습에서 현실적인 불편함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닐터.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세계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다. 냉정하게 그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름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영화 후반, 그들의 복수가 성공한 시점에서조차 개운하지 못한 점은 휠체어를 타고 검찰 조사에 응하는 대기업 총수의 모습. 감옥 안에서 "왼손으로 쓰면 되지"라며 사회를 조종하고자 하는 언론인의 모습은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사회부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공로를 세운 검사 우장희마저 결국에는 '팽'당하고 마니, 도저히 사회정의란 건 실현 불가능한 영역인가보다. 홀로 모텔방에서 깡소주를 마시며 회한에 찬 이경영의 모습에서 동정심이 생길 정도이니.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대한민국이 그리 썩지는 않았다, 언론인 개인이 그렇게까지 할 결여성이 떨어진다 등 반론도 존재하지만 영화적 과장을 제외하고 이게 모두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그리 썩지는 않았어도 갑질하는 대기업, 야합하는 정치권, 몰고가는 언론, 제기능하지 못하는 사법부가 모두 한 개인으로 응축된다면 이강희, 미래그룹, 장필우는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
영화적인 완성도도 엄청나서 3시간이라는 무지막지한 러닝타임 속에서도 지루한 틈은 당췌 보이지 않는다. 한 컷도 허투루 쓰지 않은데다 이병헌, 조승우의 미칠듯한 연기는 말도 안되는 사투리를 쓰는 디테일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이경영과 백윤식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밀실에서 세상을 조종하는 '그들'을 보면서 유쾌하게 '저건 영화일 뿐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가 과연 올 수 있을까. 영화 속 악의 축은 두가지다. 모든 걸 돈으로 조종하는 재벌, 그리고 이들에 빌붙어서 조율하는 언론 권력. 적어도 언론 권력만이라도 제대로 기능한다면 그나마 영화로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PS.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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