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한비야] 지도 밖 그녀가 아름답다

슬슬살살 2016. 6. 10. 21:57

바람의 딸, 한비야
오지탐험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바람의 딸이란 별명과 함께 젊은 여성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결혼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세계를 누비며 자기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어필했을 터. 게다가 관광지를 쫒아 다닌 게 아니라 위험 천만한 지역들을 들쑤시고 다닌 한비야의 여행은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관심을 끌었다. 물론 논란도 있었다. 부족한 글 솜씨, 문장에 담긴 치기, 잘못된 정보와 불법적인 행위1들은 지금까지도 한비야의 원죄로 남아있다. 단순한 과장을 넘어서 그녀의 정보만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수많은 후배 여행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었기에 충분히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지도 밖 세상으로
젊은 시절 홀로 오지를 누렸던 여인이 왜 치기가 없을까. 오히려 그런 부족함속에서 다시 한번 큰 선택을 하니 국제 구호 NGO 활동이다. 그간 다녔던 오지들이 그래도 지도 안에 있는 부분이라면 그녀가 다시 발을 내딛은 곳은 '지도 밖'의 세계. 지도에는 존재하나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곳. 기아와 살육의 현장이다. 긴급 구호 팀장으로 제2의 여행을 떠난 그녀는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 있다. 현재에는 월드비전학교의 교장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모양이지만 당시 남겼던 글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이고 유명 셀럽이 펴낸 이 책 한 권이 수십명의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해 냈다.

 

사실 경험 없는 한비야라는 여행가를 긴급구호 팀장으로 임명한데에는 한 명의 활동가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유명인을 활용한 모금 확대, 홍보 효과, 국가 지원의 여론 형성 등 보이지 않는 역할을 더 기대했을 터이고 충분히 그 역할을 해 냈다. 이런 얼굴마담이라면 얼마든 박수쳐 줄 일이다. 게다가 현장에서도 꽤나 열심히 뛴 그녀의 열정은 존경할 만하다.

 

기아에서 소년병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전하는 세상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직접적이고 덤덤한 현실이다. 오히려 너무 덤덤해서 공포스럽고 일상이어서 동정심이 생긴다. 이 책은 아프가시스탄의 기아 구호부터 말라위의 에이즈 예방, 시에라리온의 내전과 전쟁에서의 활동까지를 담고 있다. 현장 하나하나가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내전 한 가운데에서 다이아몬드 때문에 손이 잘린 시에라리온의 소년 이야기다.

 

"어느 날 새벽 한 무리의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쳐들어 왔어요,.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도망갈 시간도 없었죠. 내 나이 또래 되는 반군들이 총을 들이대면서 우리 마을 남자들을 한 줄로 세워서는 나무 등걸 밑으로 끌고 갔어요. 그러고는 한 사람, 한 사람 손목을 나무 등걸에 올려 놓고는 코코넛 따는 칼로 내리 쳤어요. 잘린 손목들에서 솟아나온 피가 나무 등걸 주위에 흥건했어요. 완전히 손목이 잘린 사람들과 반만 잘린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몸부림 치며 울부짖었죠.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속으로 기도했어요. 내 손목이 단칼에 잘려나가게 해 달라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현실이 지옥이라 하지만, 이런 지옥이 또 있을까. 여기 뿐만이 아니다. 약 두개 값 1200원 때문에 에이즈에 걸려서 세상을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 배가 고파 눈이 머는 독초를 씹어야 하는 가족, 총알이 빚발치는 전쟁터 한복판의 구호활동, 그 와중에서도 지원금에 대한 성과2를 원하는 관료들. 1시간이면 읽을 짧은 책자 안에는 관심 밖이었던 지도 밖 세상이 있었다.

 

몸값 '0'인 그녀를 존경한다

긴급구호 요원의 몸값은 0원이라는 것을. 우리 단체는 납치범들과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다. 납치 세력이 인도적 지원을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준다. 구호 단체인 우리가 아군이건 적군이건 굶어 죽는 사람, 아파 죽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나 약품을 갖다 주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질 석방의 대가로 돈을 요구할 때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우선 우리 후원자가 한 푼 두 푼 모아준 후원금으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몸값 0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곳을 뛰어 다니는 건 열정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재밌는 건 긴급 구호 NGO들도 일반 사회와 똑같다는 점이다. 현지인을 무시하는 사람, 음식 투정하는 사람, 영어 우월 주의자, 오만한 사람들까지. 그러나 그들 모두 가슴 속에 열정을 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현장에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그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이 향하는 희생과 구호. 그 모든 것이 존경스럽다.

  1. 예를 들면 국경을 넘거나 할 때의 일 들 [본문으로]
  2. 예를 들면, 구호 팀장으로의 참여라던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