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오피스] 일상의 공포를 현실로 꺼내려는 의도는 좋았다만

슬슬살살 2016. 7. 13. 17:43

스포일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괴담들이 학교나 엘리베이터, 집, 화장실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하는 걸 생각해 보면 진짜 공포는 폐가나 공동묘지 같은 곳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에서 배가 된다. 영화 '오피스'는 일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담은 작품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대다수는 크건 작건 봉급 생활자이고 그들 대다수는 사무실에서 근무를 한다고 할 때, 공포의 배경으로는 최적인 곳이 오피스다. 게다가 이곳은 전쟁터에 비견할 만큼 무한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던가.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인턴으로 시작해야 하며, 입사한 이후에는 실적 압박, 승진 경쟁까지 벌어지는 잔인한 곳.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지옥의 축소판 같은 곳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이다.'오피스'는 이런 공간 내에 우리사회에 벌어진 각종 부조리 - 희망고문, 갑질, 인간 이하의 대우 - 를 벌여 놓은 스릴러물이다. 


착실한 회사원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잠적했다. 그의 행적을 쫒는 수사진이 회사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하지만 정작 빠져나온 영상은 없다. 회사 건물 어딘가에 숨어 있을 김병국 과장을 찾아야 한다. 한편, 김병국 과장의 동료 직원들은 어딘가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먼저 지방 대학을 나와 6개월 간 인턴을 하고 있는 이미례는 정식 채용을 노리지만 또다른 낙하산 인턴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어 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악마같은 상사 김상규 부장, 과장을 모함하고 있는 대리와 완벽주의 싸가지 여자대리, 능력은 있지만 회사 자체에 시니컬한 사원까지... 그냥 존재하는 모든 짜증나는 동료직원들을 한군데에 모아 놓은 듯 하다. 김병국 과장의 잠적 이후에 사무실에서는 이들이 하나둘 씩 잔인하게 살해 당한다.


사표를 쓰는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직장인들의 암묵적인 상식 아닌 상식이 있다. 김병국 과장 또한 조직에 치여 일을 벌인 사회가 나은 피해자다. 또한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낙하산에 치여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는 이미례 역시도. 이 둘의 접점은 없지만 냉정한 조직 세계에서 고립되어 있는 인물들로 아무리 잘하려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일은 김병국 과장의 영향을 받은 이미례가 저지른 것으로 김병국 과장은 이미 자살한 상태다. 조직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이미례가 김병국 과장의 사건으로 인해 정신이상을 보인 것. 점점 미쳐가는 고아성의 연기가 압권이다. 특히 고아성이 맞는 상황들을 보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짜증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아성의 연기가 빛을 발하기는 하지만 스토리가 너무 구태의연하고 특히 공포를 담았어야 하는 상황들의 연출이 후져서 완성도는 떨어진다. 그나마 봐줄 수 있는게 류현경이 죽음을 맞는 화장실 장면 정도? 나머지 부분은 그야말로 안습한 연출이다. 시나리오 역시 개연성이 약하고 사건 사건의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악마의 연기 일인자인 박성웅의 형사 역 또한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공포스럽지도, 스릴 넘치지도 않은 평이한 작품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