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갓 오브 이집트] 이집트 신화의 현대적 복원

슬슬살살 2016. 9. 22. 23:54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이제 익숙하다. 내용은 몰라도 토르와 로키 같은 이름의 북유럽의 신들도 어벤져스 덕에 귀에 달라 붙는다. 그렇지만 피라미드를 세운 위대한 문명, 이집트의 신들은 잘 모른다. 태양신 '라'의 이름을 딴 파라오들만이 신과 동격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갓 오브 이집트>는 그래서 특별한 영화다. 낮설기만 한 이집트의 신화를 성공적으로 재해석 했을 뿐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손색없는 구성은 새로운 느낌의 영웅 신화를 만들어 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대의 이집트.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다. 그리스 신화처럼 신이 인간을 보살피는 수준이 아니라 신이라는 우월한 종족이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다스리는 시대다. 인간보다 월등히 키가 크고 황금색 피를 흘리는 신의 모습은 아예 외계인이라 해도 어울릴 정도로 이질적이다. 반면 올림푸스처럼 상상 속의 이공간을 들락거리지 않고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현실세계로 한발짜국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인간이 죽은 뒤에 받게 되는 사후 심판의 규칙을 바꾼다던지 하는 모습과 이집트를 통째로 삼키려는 아포피스와 매일 매일 혈투를 벌이는 태초의 신 '라'의 과업에서는 '산'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잠깐 여담을 하자면 '라'와 '아포피스'의 대결 장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절대 악 '아포피스'가 삼키려는 이집트의 모습이 원형의 지구가 아니라 평평하고 양 끝으로 나일강이 끝없이 떨어지는 모습, 고대인이 그렸던 지구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갓 오브 이집트>는 고대 이랬을 꺼야, 라는 상상력이 아니라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신화를 현대적으로 옮긴다는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던 것. 평평한 지구의 모습 하나로 <갓 오브 이집트>는 고대인의 머릿 속을 형상화한 독특한 작품으로 올라 선다.

 

태초에 창조신 '라'가 있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형인 오시리스는 풍요로운 나일강을 다스렸고 사막지대는 동생 세트가 다스리게 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각각 지혜를 다스리거나 사후세계, 대지, 사랑 등을 담당하여 인간들을 조화롭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두배가 되는 키와 황금 피를 흘리는 그들은 자유롭게 동물로 변신할 수 있기도 하다. 오시리스가 아들 '호루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날, 세트가 반란을 일으켜 호루스의 양 눈을 빼앗고 모든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 최고의 신이 되길 원하는 세트는 동료 신들을 하나하나 굴복 시켜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라'에 도전하고자 한다. 한편 인간계의 도둑 '벡'은 호루스를 추종하는 '자야'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가 노예로 빼앗기고 만다. 탈출 도중 '자야'는 사망하고 이를 되살리기 위해 '호루스'의 한쪽 눈을 훔쳐 내어 주인에게 돌려 준다. '호루스'가 나머지 눈을 찾고 왕위를 빼앗는다면 왕의 권한으로 '자야'를 되살릴 수 있다는 말에 신들의 전쟁 한복판에 유일한 인간으로 참전한다.

 

일단, 신들을 주인공으로 내새우고는 있지만 진짜 포인트는 인간, '벡'과 '자야'의 사랑이다.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벡'의 힘은 보잘것 없다. 한번도 신들을 상대로 깨갱조차 할 수 없는 미약한 인간. 하지만 '자야'에 대한 사랑만으로 '호루스'를 훌륭하게 수행하며 가장 중요한 순간, '호루스'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변신을 거듭하는 신들의 전쟁 모습, 우주를 가로지르는 배에 탄 '라'의 웅장함, 각기 다른 능력의 신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훌륭하지만 '벡'의 재기 발랄한 모습은 보는 이를 절로 웃음짓게 한다. 비장함보다 유쾌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벡은 애인을 잃은 비운의 모습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을 상징하는 벡에게서 그 어느 신 보다도 위대함을 느낀다.

 

 

신보다 로봇에 더 가까운 모습이 관객들의 외면을 부른 듯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은 영화이면서도 좋은 평을 받지 못한 건, 아마도 로봇에 가까운 신들의 모습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이라기 보다는 트랜스포머에 가까운 이집트의 신들에게서 너무나 이질감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오히려 마음을 풀어 놓고 원형의 신화를 곰씹으면서 보기에는 너무나 멋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