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곡성] 의심에 대한 합리적 의심

슬슬살살 2016. 7. 26. 09:15

"절대 현혹되지 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에 대한 이야기가 흐른다. 2016년 최고의 화제작 답게 영화의 호불호와 무관하게 이슈메이킹은 확실하게 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해석의 역할을 맡겨 버리는 영화 대다수가 모호함의 자세를 취하는데 비해 사건을 적절하게 매듭지음으로서 뒷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결말에 대한 해석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것도 이 때문. 곡성이라는 제목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명칭과 곡소리라는 모티브를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것 부터가 모호함의 출발이다. 거친 스릴러처럼 생각했다가 뜻밖의 오컬트 영화를 만나는 당혹감 역시도 계산된 의도다.


좁은 시골 사회인 곡성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일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장소에는 넋이 나간 범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건들은 알 수 없는 피부병, 그리고 외지인과의 접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끔찍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던 경찰 종구(곽도원)는 마을을 떠도는 괴소문과 딸의 변화로 점점 의심을 가지고 사건을 파헤쳐 간다. 진실에 접근해 갈수록 외지인에 대한 의심이 커져가는 종구는 딸의 병으로 인해 마침내 폭발한다.


왜 하필이면 자네 딸이냐고? 그 어린것이 뭔죄가 있다고?
자네는 낚시할적에 뭐가 걸릴건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가? 그놈은 미끼를 던진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분것이고, 그놈도 뭐가 나올지는 지도 몰랐겄지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굿을 치르는 일광(황정민)은 모든 일의 원흉을 산 속에 있는 일본인으로 지목하고 그에게 살을 날리는 의식을 거행하지만 종구로 인해 물거품이 된다. 점차 변해가는 종구의 딸. 종구는 결국 직접 일본인을 없애기 위해 산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동료들과 일본인을 없애는데 성공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종구 앞에 놓여진 건 잔인한 두 개의 선택지. 미치광이 여인처럼 보였던 무명(천우희)은 자신이 일본인을 잡기 위한 덫을 쳐 놓았고 닭이 세번 울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가 살 수 있다 한다. 일광은 무명이 모든일의 원흉이며 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고.



의심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누가 누구를 현혹하고 있는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만드는 영화다.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일광이 일본인과 한패라는 점이 정설인 듯. 일본인과 무명의 정체가 가장 논란 거리다.


먼저 일본인은 '적그리스도'인 듯 하다. 의심을 품은 사제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지고 그의 의심이 커져갈 수록 변하는 모습은 악마의 형상 그대로다. 수호신이라는 의견이 강한 무명의 정체는 적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신'이라 생각된다. 첫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자신을 믿으라는 그녀는 성경에서의 베드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았다. 심지어 자신을 의심하는 종구를 애처롭게 붙잡는 모습까지도. 악마의 하수인격인 일광이 그녀 곁에서 피를 토하게 하는 강력함이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심지어 일본인 역시 그녀로부터 도망가는 모습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의심과 맹목적인 신념, 종교의 허구, 의심에 대한 관점을 독특하게 혼재시켜 놓은 영화 '곡성'은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끝난게 아닌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바랬다는 감독의 의도가 정통으로 먹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