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상도]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슬슬살살 2016. 9. 25. 19:44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아래 직종으로 보았던 조선 시대. 선비의 나라이니 만큼 부에 초연핸다는 인식 때문인가, 상업인 중에서는 이렇다 할 인물이 없었다. 부자들은 토지를 가진 지주에서 나오기는 하더라도 장사꾼 중에서는 거의 없다싶피 하다. 그래도 유통의 중심지인 개성, 송도 같은 곳에서는 상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홍삼 같은 물품으로 중국과의 교역도 활발했으며 특히 홍삼은 엄청난 이권이 달린 무역품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최고의 거상 임상옥도 홍삼 교역으로 장사에 뛰어든다.

 

소설 '상도'는 상업의 도를 깨우친 임상옥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인 화자가 자동차 회사의 총수인 김기섭 회장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던 중 김회장이 멘토로 삼았던 임상옥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하나씩 밝혀내는 형식을 띠고 있다. 주 내용은 조선의 임상옥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의 구성은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임상옥을 더욱 현실감 있게 해준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제일 거상을 꿈꾸는 임상옥은 젊은 시절 첫번째 교역에서 부득이하게 중국 여인을 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공금을 횡령한다. 상계에서 퇴출당하고는 머리를 깍고 승려로의 삶을 산다. 몇 년 후, 임상옥에게 구해진 중국 여인 장미령의 도움으로 다시 상계에 뛰어 들고 이때 모시던 대 스님 석숭에게 세가지 비책을 받아 나온다.

 

석숭 스님 曰 "앞으로 상인으로 승승 장구를 하겠지만 위기가 세 번 있을 터, 그 위기를 피할 세 가지 비책을 주겠다" 하여 받은 것이 '死'(죽을 사), '鼎'(솥 정) 두 글자와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잔 계영배다. 이 세가지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소설 '상도'의 큰 줄기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홍삼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볼 위기는 죽을 각오를 한 배수의 진 전략으로 극복한다. 이 에피소드는 웹툰 봉이 김선달에서도 그대로 차용 되었다. 홍경래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위기에서는 솥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선문답을 통해 목숨도 살리고 홍경래의 난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계영배는 가득 채움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재물이 넘치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계영배에 대한 비밀을 알아챈 임상옥은 모든 재물을 나눠줘 버리고는 은거에 들어간다.

 

죽고 죽으며 나고 났다가 다시 죽나니, 금을 쌓으며 죽음을 기다림 어찌 그리 미련한고, 부질없는 이름 위해 얼마나 이 한 몸을 그르쳤던가, 인간의 껍질을 벗고 맑은 하늘로 오른다.

 

상인으로서 맞이하는 세가지 위기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홍경래의 난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친구 이희저의 딸, 송이와의 사랑. 이로 인한 핍박과 헤어짐은 구구절절한 로맨스의 한 축을 이룬다. 마지막 천주교에 귀의한 송이의 순교를 통해 상업으로 道를 이룬 임상옥과 더불어 숭고한 집착, 어떠한 일이 도에 이르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고 있다. 모든 일은 숭고하며 도에 이르는 법. 최인호 작가는 이를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임상옥을 추앙한 가상의 인물 김기섭 회장을 통해 옛 상도를 현대로 끌어 오려는 노력이 기막히다. 상도(商道). 상업으로 부를 일구되 부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