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영화의 원제는 Intouchables(인터쳐블)이건만 한글제목은 버젓이 언터쳐블이라는 제목에 1%의 우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프랑스 영화를 국내로 들여 오면서 친절히 해석한 제목을 달겠다는 제작사의 발상이었는지 몰라도 무언가 혼란을 야기했다. 쉽게 말하면 불어의 Intouchable이 영어로는 언터쳐블, 즉 불가촉 천민이나 '건드릴 수 없는', 혹은 극빈자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유럽권은 훨씬 더 평등한 사회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음과 동시에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장애인 갑부와 이를 의식하지 않는 하층민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이지만 화면 곳곳에 양극화에 대한 비판적 요소들이 가득하다. 특히 드리스가 살고 있는 슬럼가의 모습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기란 불가능하다.
재벌이지만 목 아래가 마비된 필립은 자신을 돌봐줄 도우미를 고용한다. 단순히 기초수급비를 타기 위해 가짜 면접을 치른 드리스가 엉겁결에 도우미가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영화다.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지만 드리스는 결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밑바닥인 드리스에게 필립의 장애는 결코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필립에게 여자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한다던지,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놀린다던지 하는 행동들은 필립 스스로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우정은 덤덤하면서 예쁘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 당연한 것.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이에게 감동을 느끼고 있자면 스스로가 부끄러워 지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한다. 나는 과연 저들을 같은 인격체로 바라보고 있는가. 동정하지는 않는가.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을법도 하건만, 감독은 덤덤한 뉘앙스를 참을성 있게 유지한다. 그리고 끝까지 폭발시키지 않은채 영화를 마무리 한다. 오히려 영화적 폭발은 어스 인더 파이어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일어난다. 잠깐의 파티에서 모두가 춤을 추는 그 장면. 귀에 익숙한 September. 길쭉한 팔다리로 춤을 추는 드리스의 모습과 이를 보고 즐거워하는 필립까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여기를 지목할 것이다.
밤을 새서 작업하거나, 아침에 일찍 나갈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새벽거리에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다 보면 익숙한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주는 야릇한 흥분이 있는데 '언터쳐블'은 바로 그런 느낌의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실존 인물인 드리그와 필립의 모습이 나올 때 이 영화는 가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면서 여운을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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