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에, 만화를 본다는 건 부모님이 이해하는 범위 내의 탈선 정도의 취미생활이었다. 혼나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책본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정도. 하기야 요즘 만화책 뒤적이고 있으면 나 때보다 더 깨지기는 하겠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린 만화책이 등장했으니 바로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되시겠다. 교육용 만화라는 특이한 장르의 원조로 이 만화가 없었다면 그 유명한 'Why'도 없었으리라. 물론 이원복 교수 개인에게 있는 여러가지 의혹은 잠깐 접어두자.(친일, 뉴라이트, 표절... 끝이 없는 의혹이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먼나라 이웃나라의 인기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인기 원인을 찾아보면 세계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만화라는 타이틀이었다. 부모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게 해 줬으니. 재미라도 없었다면 한때의 유행으로 그쳤겠지만 꽤나 장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이원복 교수의 그림체와 작화 스타일이 시간의 흐름, 인물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데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은 주제만 와인으로 바꾸었을 뿐 그 때 그 스타일 그대로를 가져온다. 대부분의 고급 취미가 그렇듯, 와인도 단순히 공부한다고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진정으로 즐기고 관심을 가져야만 늘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글만 읽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거라도 읽으면 좀 나아질까, 어디가서 아는 척이라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꽝이다.
엎서 얘기했다시피 이원복 교수의 스타일은 서사에 적합하다. 이 책에서도 초반부의 와인 역사를 얘기할 때는 흥미진진하다. 머리속에도 쏙쏙 들어오고. 하지만 뒤쪽으로 가면서 와인의 종류, 포도 품종, 평가 같은 이르면 정리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물론 '파리의 심판'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재밌게 다뤄지지만. 결과적으로 와인에 대해 겉을 살짝 핥을 수 있는 정도의 기본지식을 맛보이는 수준의 책인 것이다. 안읽는 것보다 1g만큼 나을 수 있다. 시리즈인 듯 하지만 1권만으로도 충분. 이걸 읽을 시간이 있으면 그냥 한 잔 기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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