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가 보여주는 빛과 색의 아름다움

슬슬살살 2017. 2. 15. 14:15

리얼리티와 분간하기 어려운 섬세한 3D 애니메이션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2D는 또다른 섬세한 맛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주는 강렬한 색채의 아름다움은 3D만으로는 담을 수 없다. <너의 이름은.>의 포스터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영화를 선택하게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판타지에 기반을 둔 신비로운 이야기라면 신카이 마코토는 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세계에서 벌어질 법한 기묘한 이야기. 이를테면 '미츠루 아다치'식의 잔잔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이 영화의 감동 원천인 셈이다. 특히나 도쿄의 번화가와 작은 시골마을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시점의 변화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힘이 있다. 생기넘치는 도시의 아름다움 vs 조용하고 청아한 시골의 멋스러움.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바뀌는 꿈을 꾼다. 낮선 가족과 친구들, 학교, 풍경. 기묘한 꿈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몸이 바뀌었던 것. 이후 주기적으로 바뀌는 서로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메모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서로에게 메세지를 남긴다. 서로의 몸에 익숙해질 무렵, 갑작스레 몸이 바뀌는 일이 없어지고 타키는 미츠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 단서라고는 꿈에서 본 풍경뿐이다1.


스포일러

타키가 꿈 속의 이미지를 찾아낸 미츠하의 마을은 2년전 혜성 충돌로 사라져버린 비극의 마을. 서로의 몸만 바뀐 것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 몸이 바뀐 것이다. 그때의 사고로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 미츠하를 다시 만나게 해 준건 미츠하가 남긴 술2.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워딩은 '무스비'다. 


"이 근방의 신을 옛말로 무스비3라고 불렀다.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신의 힘이란다. 우리가 만드는 끈목4도 말 그대로 신의 솜씨,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나타내는 거지. 그것은 더욱 모여 형태를 만들고 뒤틀리고, 얽히고 때로는 돌아오고 멈춰서고 또 이어진다. 그게 바로 무스비, 그게 바로 시간."


요약하면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걸 무스비라고 할 수 있겠다. 일종의 운명의 끈 같은 개념인데 이 영화에서는 미츠하가 남긴 술이 타키와 이어주는 무스비인 셈. 왜 무스비가 그 둘을 이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시공간을 넘어 이어졌다. 


타키와 재회한 미츠하는 마을에 폭약을 설치하고 산불이 났다고 해서 사람들을 구해내는데 성공. 하지만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고 서로에 대한 기억도 옅어져 간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어렴풋한 서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도쿄 어딘가에서 만나면서 서로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은...' 서로의 이름을 떠올렸는지, 아니면 묻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움은 동경의 대상이다. 로맨스라고만 특정 짓기에 너무 아까운 예쁜 영화. 신카이 마코토가 만들어낸 분위기에 흠뻑 취한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여운이 남는다. 

  1. 꿈에서 깨면 점차 기억이 옅어지기 때문에 단편적인 이미지만이 남아 있다 [본문으로]
  2. 마을 무녀의 피를 이은 미츠하는 쌀을 씹어서 술을 만들고 그 술을 마신 타키가 다시 미츠하와 재회한다 [본문으로]
  3. 일본어로는 '매듭'이라는 뜻 [본문으로]
  4. 여러 올의 실로 짠 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