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천만 좀비영화. 좀비라는 소재가 워낙 하드하다보니 자본 딸리는 한국에서는 꿈도 못꾸던 장르였는데... 잘만드는걸 넘어서 천만, 해외 반응도 꽤나 좋은 모양이다. <새벽의 저주>, <28일후>, <레지던트 이블>, <월드워Z>까지 대충 떠오르는 좀비물들만 해도 장르물의 획을 그었던 작품들인데, 여기에 <부산행>이 하나 추가될 모양이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달아날 곳 없는 극한의 공포와 함께 문명의 파괴라는 자극적인 요소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극한 모습 - 그게 선이든, 악이든 - 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는게 좀비물이 주는 쾌락이다. 아포칼립스를 간접체험하는 안티한 쾌감이랄까. 그런데 한국에서의 좀비는 사실상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다. 일단, 국토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레지던트 이블>에서의 사막, 도시를 오가는 화려한 액션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총기도 자유롭지 않아서 군인 외에는 총을 본적도 없는 이들이 태반. 미국처럼 총포상에 진을 치고 좀비와 대항하거나, 화장실에 숨겨놓은 무기를 다루는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조건. 그래서 택한게 기차라는 닫힌 공간을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열차의 형태상 일정 규모마다 격벽이 존재하고, 좁은 일자형 공간이라 어느정도 힘대힘의 대항이 가능한 구조니까. 그러나 <부산행>을 좀비에 대항하는 인간의 힘이라는 단순논리로 접근할 순 없다. 액션을 넘어 자기희생, 공동체 의식, 가족애 같은 인간 관계를 더 깊숙히 들여다 보는 소재로 좀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통해 부녀 지간의 소원한 관계의 개선, 자기만 살겠다는 추악한 이기심, 동료와 가족에 대한 수치심, 아이와 여자에 대한 자기 희생, 더 나아가 사건에 대한 죄책감까지... 수많은 인간적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관계는 <연가시>, <감기>에서처럼 무책임한 정부와 선량한 시민의 구도보다 더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펀드매니저인 석우(공유)는 아이와 함께 원치 않는 부산행을 하게 된다.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 기차가 서울을 출발하려는 순간 피투성이 여성이 기차에 간신히 올라타고 순싯간에 기차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전국이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그나마 격리공간인 부산행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기차 안에서 좀비와 대결을 펼치며 어느정도의 안전을 확보하지만 기차는 언젠가 서야 하는 법. 그나마 부산이 초기방어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가장 큰 위안이다. 그러나 대전에서의 도중하차 실패와 늘어나는 좀비떼의 습격으로 위협이 가중된다.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공유지만 상화역을 연기한 마동석의 비중이 훨씬 크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는 괴력의 소유자인 상화는 장판교의 장비처럼 좀비떼와 맨몸 격투를 벌이는데 그 장면 하나하나가 압권이다. 게다가 설정상 약간 귀여운 면도 있어 '마요미'의 캐릭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해외에선 이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귀여운 마초라니..심지어 임신중인 상화의 아내(정유미) 역시 체력왕이라 산달에 전력질주로 기차를 따라잡는 괴력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 부부의 활약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모양새다. 마동석 부부를 중심으로 악인 김의성(본인만 살겠다고 여럿을 사지로 모는 이기주의자), 공유(일중독 아빠이면서 이 모든 사태에 간접적인 책임을 가진 사람)가 대립하고 그 주변으로 여러 인물들이 엮여 있는 구조.(친자매처럼 지내오다 한편이 좀비가 되는 할머니들, 썸타는 중인 야구부원과 응원부, 책임을 다하고 죽는 기관사 등등)
헐리우드처럼 일종의 소규모 파티를 만들어서 좀비와 대응하는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를 기차 안에 집어 넣고 관찰하기 때문에 산만해 질 수 있었지만 적절한 분량 배치로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마지막 공유의 죽음 장면은 좀 신파이긴 했지만 그 장면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밸런스는 훌륭한 영화. <부산행>은 좀비가 가지는 공포, 인간의 욕망, 본성에 이르기까지 잘 다듬어진 매력덩어리다. 부산에 무사히 도착한 일행을 맞이하는 군인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속편을 기대하는게 나뿐만은 아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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