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SM과 아동학대를 다룬 괴로운 소설이다. 르포 형태의 날카로운 글을 쓰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류답게 본인이 느낀 문제를 흔들림 없이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변태나 살인자, 창녀로 규정되는 사람의 껍데기를 뚫고 그 안에 있는 본질까지 들어간다.
우리는 강력한 범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유난히도 높은 감정을 가지는데 '조두순 사건'이 좋은 예다. 성폭행이나 변태적 살인, 아동 대상 범죄, 묻지마 범죄 같은 반사회적 행태에 더욱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동기가 불손하기 때문이다. 다툼을 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강도나 도둑에 대해서는 '금전이 필요해서'라는 나름의 이유가 따라 붙지만 앞서 말한 일들은 마땅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의 만족이라는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동기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무라카미 류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정말 원인이 없을까?
가와시마 마사유키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뭔가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그는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또 다른 자기 자신과 겹쳐진 다음에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여전히 웅웅거렸다. 갓난아이를 찌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아이스 픽으로 찌르는거야.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마사유키는 연쇄살인마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이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려 한다. 죽음의 계획을 준비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그는 분명, 잠재적 반사회적 범죄자다. 악인이다. 그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반면에 자신의 팔을 깨무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벽에다가 머리를 부딪히기도 한다. 피가 나는데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지저분한 팬티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는데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 부모가 이런 아이들을 때리는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중략) 오히려 좋은 감정을 갖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결과 하나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부모를 미워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애정과 폭력성이 뒤엉켜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이나 상대방이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면 오히려 안심을 하는 것이다. 온화함.. 이것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 이처럼 온화함이 긴장과 불안, 공포의 재료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싫어하고 화낼만한 태도를 취함으로서 미움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마사유키는 어린시절 엄마에게 심한 학대를 받았다. 두둘겨 맞고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는 어린 마사유키의 모습에서 분노의 화살은 마사유키의 엄마에게 향한다. 그 학대의 결과물이 자신의 아이에게 살인 충동을 느끼는 사이코인거다. 물론 그 엄마도 그런 일들을 겪어 왔을꺼다. 미움받기 위한 노력의 결정이 사이코패스라는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은 끔찍하다. 게다가 원인은 알고 있지만 분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이는 더 무력하다. 어쩌면 반사회적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이 무력함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징벌이 불가능한 복잡한 원인에서 간결한 복수를 위해 '사형'이라는 수단을 울부짖는지도. 정작 필요한 건 사회적인 수술인데도 말이지.
어찌 됐건 살해 대상을 찾아 나선 마사유키는 SM클럽의 접대부를 표적으로 한다. 사나다 치아키. 온 몸에 피어싱을 한 그녀는 자신을 학대하는 일에 성욕을 느끼는 새디스트, 가학성 변태적 성향을 가진 여성이다. SM 전문 접대부인 그녀가 마사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학대가 원인이 된 케이스다. 무라카미 류는 아동학대의 결과물 두 개를 만나게 해 화학작용을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치아키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마사유키에게 사랑을 느낀다. 자신을 성욕의 대상이 아니라 중요한 개채로 보아주는 것에 대한 감정이다. 물론 그게 살인이라고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남자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특별함을 느낀다. 마사유키는 계획되로 되어가지 않는 모습에 짜증을 느낀다. 죽이려고 하는 대상이 본인과 같은 느낌을 가진 여자라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오로지 깨끗하게 죽이고 싶을 뿐인데, 좀처럼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두 명이 실제로 서로를 죽였는지 어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아동학대라는 엽기적인 가학행위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는지 보자. 부모가 문제라고? 그들 역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그들 역시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을 테니. 소설의 끝은 명확치 않다. 치아키는 유두에 피어싱을 하고 마사유키는 묻는다. '뭘 하는거지?' 치아키는 대답한다. '피어싱'. 피어싱이 계속된다는 건 가학의 지속을 의미한다. 결코 멈추지 않는 악마의 쳇바퀴가 다시 돌아간다. 그렇지만 책을 덮은 독자는 범죄자를 이전과는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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