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제시하는 작가, 알랭드 보통의 짧은 에세이집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다 읽은 후에는 주변이 새로이 보이게 하는 마법같은 글이 아홉편 실려 있다. 이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낮선 일상'이다. 알랭드 보통은 '슬픔이 주는 기쁨'이라는 시작글을 통해 일상을 낮설게 바라보는 관점의 의미를 조망한다.
<자동판매식 식당 Automat, 에드워드 호퍼, 1927>
<자동판매식 식당>은 슬픔을 그린 그림이지만 슬픈 그림은 아니다. 이 그림에는 위대하고 우울한 음악 작품 같은 위력이 있다. 실내 장식은 검박하지만, 장소 자체는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혼자일 수 있다. 이 여자와 비슷하게 생각에 잠겨, 이 여자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남자와 여자들. 이런 공동의 고립은 혼자인 사람이 혼자임으로 해서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호퍼는 고립되어 있는 이 여자와 공감을 느껴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관점의 변경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 화가다. 그는 일상적인 모습 속에 배어있는 고독함, 슬픔 같은 감정들을 조명과 분위기를 통해 표현해 냈다. 휴게소, 자판기, 패스트푸드점 같은 산업적 영역의 공간 속에서 개채의 외로움을 느끼는 건 평범한 일이지만 그 속에 배어있는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호퍼는 그런 점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생각해 보라.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오스카 와일드)
알랭드 보통이 주목한 공간은 동물원과 공항,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도시 취리히다. 상상력을 통한 감각적인 여행을 하는 방법, 티켓은 상상력 하나다. 공항에서는 활주로를 오가는 비행기의 여정을 상상하고, 취리히의 수퍼마켓은 호흐의 작품과 비교한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어린 소년과 함께 있는 여자 A woman with a Young Boy Preparing for school, 페터 드 호흐>
취리히가 이 세상에 주는 독특한 교훈은 어떤 도시가 그냥 따분하고 부르주아적이기만 해도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공간과 공간의 사이는 진정성, 일과 행복,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에세이가 채워진다. 알랭드 보통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공간은 <여행의 기술>을 통해, 일과 행복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사고를 발전시켰다. 우리는 이 에세이집을 통해 원근법을 익힐 수 있다. 교양에 상상력을 더해 바라보는 일상은 아주 멀리서, 혹은 아주 가까이에서 보는 것처럼 세밀한 여행이 된다. 알랭드 보통은 기꺼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준다.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유서 깊은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있을 때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기에,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것을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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