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학은 국가의 운명과 비슷하게 쇠락했지만 다시 올라오지는데에는 실패했다. 제2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배출하진 못할 거다. <나이트워치>는 장르물이지만 냉소적인 러시아의 감성을 흠뻑 가지고 있는 시리즈다. 좀비와 흡혈귀, 마법사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이지만 미국식의 히어로물도 아니고 일본식의 어드벤처도 아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국가구조만큼이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러시아식 판타지다. 퇴마록처럼 몇가지의 단편이 긴 스토리를 연결하는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은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을 편안하게 소개한다. 사전 지식 없이 몇가지 상황만으로 세계의 구성을 유추하는데 안타깝게도 번역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전문적인 러시아 번역가가 많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이트 워치>의 세계는 변신자, 마녀, 흡혈귀, 주술사가 공존하고 그들이 각각 빛과 어둠의 경비대로 나뉘어 대립하는 형태다. 독특하게 핏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랜덤하게 다른 존재가 되는데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어스름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형태와 성격을 결정할 수 있다. 예를들면 빛의 세계에 속한 흡혈귀가 되거나, 어둠의 세계에 속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듯 하다. 그들은 그저 '다른 존재'일 뿐, 특성에 따른 대립은 별로 없다.
그래 예고르, 가끔 어스름의 세계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도 있긴 해. 그들은 선 또는 악의 편이 되는 거야. 빛이나 어둠의 편이. 그들은 '다른 존재'인거야. 우린 서로 서로를 '다른 존재'라 부르지. 오래 전, 어둠과 빛은 극하게 대립했고 어느쪽이 이기든 세계가 멸망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협정을 맺는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로서, 두 다른 세력을 섬기노라.
어스름의 세계에서는 '어둠의 부재'와 '빛의 부재'가 서로 다르지 않다.
우리의 투쟁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으니
우리는 위대한 휴전 협약을 체결하노라.
어느 편이든 각각의 법칙에 따라 살고, 어느 편이든 각자의 권위를 가지리라.
우리는 각자 자기 편의 권한과 법을 제한하노라.
우리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간 경비대를 창립하나니, 빛의 세력이 어둠의 세력을 감찰하기 위함이라.
우리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간 경비대를 창립하나니, 어둠의 세력이 빛의 세력을 감찰하기 위함이라.
시간이 우리를 결정하리라.
1부는 어둠의 경비대에 대항한 빛의 경비대원의 이야기다. 거대한 저주의 기둥 폭발을 막아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점은 스릴러와 추리, 스파이물을 뒤섞어 놓은 느낌이다. 일반적인 특수부대가 아니라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의 대결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2부는 조금 더 나아갔다. 어둠과 빛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그들이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어둠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인간의 자유의지, 쾌락 등을 돕는데 그 대다수는 악한 것이 대부분이다. 빛은 선한의지를 발동 시키는 것을 돕는데 그 수단이 다소 강제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너희는 우리가 잔인하다고 비난하지. 그래, 근거 있는 말이야. 하지만 마녀들의 검은 미사에서 제물로 바쳐진 어린애와 평범한 파시스트 어린이 수용소를 비교해 본다면? 파시즘 또한 너희들이 만들어낸 일이었잖아. 또 한번 철저한 통제 하에 나왔다고 하던 너희의 연구 결과야. 처음에는 인터내셔널리즘과 공산주의를 시도했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지. 그러더니 민족사회주의가 나왔고. 이것도 실수인가? 함께 충돌해서 결과를 봤잖나. 너흰 한숨을 내쉬더니 다 지워버렸지. 그러곤 새롭게 실험에 착수한거야."
모스크바의 빛의 세력들은 인간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만들어냈다. 맞다. 이념의 시작은 인간의 행복을 목표로 했었다. 빛과 어둠의 세력 대결의 최후의 보루가 모스크바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개인의 자유를 무한하게 인정하는 어둠은 이미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전 세계의 대다수에서 승리를 차지했다. 빛의 세력은 또다시 어둠을 위협할 작전을 준비한다. 과연 빛이 옳은 일일까?
왜 빛이 거짓을 사용하며, 어둠은 진실을 사용하는 것인가? 왜 우리의 진실은 무력하며 우리의 거짓은 효력을 발휘하는가? 왜 어둠은 악을 창조하기 위해 진실만을 사용해서도 훌륭히 일을 해결하는가? 악은 누구의 본성인가? 인간의 본성인가, 우리의 본성인가?
이런 저런 장르물을 많이 봤지만, <나이트 워치>는 신선한 충격이다. 주로 미국과 일본에 치우쳐진 판타지물에서 러시아는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 <데이워치>-<더스트워치>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시작인 만큼 이 작품 하나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나이트 워치>만큼은 진짜다. 번역이 서툰점은 안타깝다. 문장의 맥락이 갑자기 난해하게 다가오거나 앞뒤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많이 있다는 점은 후속작에 대한 접근을 망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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