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동굴의 여왕] 사랑과 불멸을 함께 지닌 여인, 아샤

슬슬살살 2017. 5. 7. 22:22

어드벤처의 원조 '헨리 라이더 해거드'가 쓴 또하나의 명작이다. 원제는 'She'이지만 국내에는 '그녀'와 '동굴의 여왕' 두가지 판이 있다. '동굴의 여왕' 버전이 표지만 봐서는 저연령 대상으로 번역된 것 같지만 꽤나 충실한 편이다. <솔로몬 왕국의 동굴>이 서양식 어드벤처의 원류로서 단순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동굴의 여왕>은 큰 스케일을 가지고 현학적인 틀 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파라오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칼리크라테스와 그의 아내 아메나르타스는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 이르렀을 때 원주민과 그들의 여왕을 만난다.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진 여왕은 칼리크라테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에게 불사의 몸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아내를 사랑한 칼리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한다. 분노한 여왕, 아샤는 그를 죽이고 아메나르타스를 추방한다. 이후 그녀의 자손은 대대손손 복수의 의무를 가지고 아샤와 그의 부족을 찾아 나선다. 이 이야기는 아메나르타스의 후손 레오와 그의 후견인 홀리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불멸의 존재를 만나는 모험은 단순하지만 너무나 명확해서 가슴을 뛰게 한다. 대대손손 이어지는 복수의 의무는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신선하다. 너무나 투명한 '악'을 가진 아샤에 대항하는 홀리와 레오의 생생한 모험은 책을 도중에 덮을 수 없게 한다.


나를 보세요. 세상 어떤 여자보다 아름다우며 죽지 않는 반신의 존재일지나, 세월을 뛰어넘는 기억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죠. 격정에 휩싸여 손을 휘둘렀고, 나는 사악한 짓을 했답니다. 제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내가 저지른 죄악은 씻겨지지 않을 것이고, 구원의 그날까지 나의 비탄은 끊이지 않을꺼에요.


모험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또 감정과 상황, 배경에 대한 치밀한 설명은 100년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사랑과 불멸에 대한 깊은 고찰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그대는 나의 사람, 태초부터 내가 기다려온 사람!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 그처럼 아름다운 머리칼과 피부 빛깔을 누가 또 지녔을까?
그대는 비할 데 없이 남자답고 튼튼한 두 팔을 가진 사람.
그대의 눈빛은 하늘을 닮아, 별빛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네. 그대의 완벽하고 행복한 얼굴에 내 마음은 절로 그대에게 향하고,
아, 그대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네.
그래서 그대를 택했네, 사랑하는 그대.
그대를 끌어안았네. 그대에게 위해가 가지 않도록.
아, 그대의 머리를 내 머리칼로 감싸안았지. 태양이 그대를 시샘하지 못하도록.
나는 그대의 사람, 그대는 나의 사람이 되었네.
그렇게 한동안 우린 행복했네. 시간이 부지런히 흘러 불길한 그날이 오기까진.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오호!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알지 못하네.
더 이상은 보이지 않네. 나는 캄캄한 어둠에 갇혀버렸네.
그리고 강력한 그녀가 그대를 데려갔지. 아, 그녀는 우스텐보다 더 아름다웠네.
하지만 그대는 돌아서서 나를 불렀지. 그대의 눈길이 어둠 속을 헤매었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그대를 사로잡아, 그대를 무서운 곳으로 데려갔지.
그때 그곳에서, 아! 사랑하는 그대는....
- 레오를 치료하며 우스텐이 부른 노래 -


아샤가 불멸의 불에 잘못 들어가서 처참하게 죽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왕의 귀환>, <지혜의 딸> 같은 후속작이 있다는 걸로 봐서는 되살아나는 듯하다. 티벳을 배경으로 한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시리즈를 찾는게 쉽지 않다. 국내에서 저평가 되어 있지만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