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보이는 제목이 워낙에 유명하긴 하지만 책으로서는 결코 쉬운 편은 아니다. 각기 다른 4명의 인물을 통해 우울한 시대적 분위기,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실재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보여 준다. 스토리가 있기는 하지만 흐름에 따른 비유와 상징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어렵다. 이 책에는 4명의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먼저 자유 연애주의자인 토마스.
그는 테레사에게 얽매여 7년을 살았고, 그녀는 그의 발길 하나 하나를 감시했다. 마치 그의 발목에 방울을 채워 놓은 것 같았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 거의 날아갈 듯 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적 공간 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토마스는 사랑과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토마스는 끊임없이 육체를 탐하는 남자. 마리클레르와 결혼하고 사비나와 애정을 나눈다. 그리고 테레사와 진짜 사랑에 빠지고도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한다. 그에게 사랑은 소중하면서 가벼운 가치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사랑이나 자유는 전적으로 운에 의해서 작용하는 가벼운 것이다. 베토벤의 4중주처럼 '그래야만 한다'고 믿을 뿐이지만, 우연함의 집합체인 사랑의 본질은 가벼움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존재가 가벼운걸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가벼운, 그런 존재에 대해 참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두번째 등장인물, 테레사. 보헤미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토마스와 사랑에 빠진다. 신분상승 욕구를 가진 테레사는 특별해지기 위해 토마스를 찾았지만 토마스의 오롯한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사랑을 받지만, 군중 속 한 명이다. 이 일화는 공산주의와 독재자에 대한 해학이다. 획일화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감시가 만연한 독재사회에서 테레사 같은 이들은 그야말로 감정 없는 군중이 되어 버린다.
또 한명의 여인은 사비나다. 테레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토마스의 정부였으나 이후에 프란츠와 사랑에 빠진다. 마지막 인물인 프란츠는 소련의 지배 하에 있는 프라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다. 개인의 행복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그 누구도 영혼과 양심에 있어서 오이디푸스보다 더 결백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한 일을 보고는 스스로에게 벌을 가했어요.
실험적인 작품인데다 난해하기는 마르케스보다 더했다. 내 독서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 것인가라는 자괴감도 일부 들고. 해설서에 따르면 '개연성을 거부하는 실험적인 기법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아픔과 삶의 한계를 표현하고 있다.'라고 하지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4명의 인물들을 통해 공산주의를 비웃는 것 만큼은 정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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