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저작권 문제만큼이나 리부트가 혼란스러운 시리즈지만 어벤저스를 만나면서 드디어 제모습을 찾은 모양이다. 메이 고모는 섹시한 중년 여성으로 바뀌었고 암 유발자인 메리 제인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스파이더맨은 돌연변이와 과학이 결함된 형태로 재정리 됐고 여기에 어벤저스 세계관이 배경이 되면서 이질감 없는 일체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스파이더맨 고유의 정서, 서민 흙수저 히어로라는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부각하는데 성공하면서 역대 가장 유쾌한 어벤저스 캐릭터를 예고했다. 물론 데드풀, 앤트맨 같은 개그 담당이 있기는 하지만 스파이더맨처럼 복잡 미묘한 철학을 가진 캐릭터는 전무하다.
지난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을 도와 캡틴 아메리카를 저지하는데 성공한 이후, 집으로 돌아가 평범한 학생의 생활을 보낸다. 이제나 저제나 새로운 임무를 받아 멋진 히어로가 되겠다는 중2병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어벤저스는 조용하다. 자전거 도둑 잡기 같은 하찮은 일들, 높은 빌딩이 없어 거미줄이 소용없는 동네 같은 웃픈 현실들은 가뜩이나 처연한 피터 파커를 나락가지 떨어트린다. 이런 스파이더맨에게 '건수(?)'가 하나 걸린다. 과거 데미지 컨트롤(영웅들이 파괴한 도시를 복구하거나 무기를 수거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는 용역 업체. 머릿글자가 D.C인건 나만의 착각인가)로부터 일을 빼앗긴 벌처가 아이언맨에 앙심을 품고 외계무기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 그가 짝사랑하는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피터 파커는 영웅와 시민 사이에서 다시 갈등한다.
벌처는 신의 한수다. 거대한 외계 악당이 아니라 과거 아이언맨 때문에 망한 사람이 차린 무기공방이라니.. 히어로에 이어 빌런까지 서민적이다. 물론 빌런이 그동안 많은 부를 모으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중산층 레벨. 혼혈 가족으로 설정해 리즈와의 연결성을 차단해 놓은 것도 좋았다. 덕분에 '알고보니 아빠가 악당'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세련되게 바꿀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스파이더맨의 연락을 '읽씹'하는 호건, 묘한 표정으로 피터의 주변을 맴도는 미쉘, 히어로를 보조하는 컴퓨터 사나이를 굼꾸는 네드까지... 조연들의 촘촘한 활약은 영화를 더욱 일상에 밀착시킨다.
수많은 볼거리들과 학교물에 결합시킨 청춘 에피소드, 아이언맨을 위시한 어벤저스와의 연결까지 나무랄데 없는 최고의 히어로 무비다. 역대 스파이더맨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의 멋진 작품이다. 특히 막판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등장을 예고한 벌처, 미쉘과의 추가적인 로맨스 예고, 데미지 컨트롤의 구체적인 배경 등장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차기작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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