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년 전쯤부터, 독특한 책 마케팅이 생겼다. 이른바 소책자라는 개념인데, 짧은 단편 하나 혹은 장편의 일부분을 소책자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것. 독자 입장에서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고 살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작가는 작품을 알릴 수 있어서 이래저래 윈-윈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작품이 좋을 때 얘기지만. 그런 면에서 '쇼코의 미소' 소책자는 성공적이다. 아무래도 같은 제목의 단편집 홍보용 같은데 실려있는 '씬짜오, 씬짜오'가 던지는 울림이 꽤나 깊기 때문이다. 아직 신진이라 할 수 있는 최은영이라는 젊은 작가의 이름도 머리에 남았고..
고작 서른 페이지의 이 작품은 타향에서 만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과 베트남인 가족은 비슷한 이방인인 처지라 가깝게 지낸다. 그러나 우연찮게 던져진 베트남 전쟁 이야기가 두 가족을 어색하게 만든다. 베트남전에서 형을 잃은 아빠와 가족을 잃은 응웬 아줌마의 어색한 웃음이 이 비극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함축적인 어색함에는 가해와 피해를 동시에 행한 대한민국의 태도를 거울처럼 비춘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나는 그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엄마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다는 듯이 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엄마는 조용히 하라는 투의 눈빛을 보냈다. "국물이 짜지는 않은지 모르겠네." 호 아저씨가 말을 돌렸다.
지금은 어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릴 적 그렇게 배웠다. 한번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몰살했던 베트남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요구로 참전했다고는 하지만 어엿한 침략과 횡포의 역사다. 베트남의 누군가는 한국군으로 인해 가족이 몰살당했고 누이는 강간당했으며, 아들을 잃었다. 심지어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기록도 어엿하게 존재한다.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투이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의 분위기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두가지밖에 없다. 주인공처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빠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가? 저도 형을 잃었다구요.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디서 많이 본 말 아닌가?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일본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는 일본에 과거사 반성을 요구한다. 거기에는 우리의 반성도 포함되어야 한다. 지배하지 않는 다고 해서 침략이 아닌게 아니다. 작가 최은영은 이 두 가족의 어색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미묘한 역사관의 뒤틀림을 꼬집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무겁기만 한 건 아니다. 성년이 되어 독일을 다시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화해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들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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