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혹성탈출: 종의 전쟁] 유인원, 진화 경쟁에서 승리하다

슬슬살살 2018. 1. 4. 09:52

혹성탈출의 시리즈가 끝났다. 노바의 등장으로 후속작에 대한 여지는 남겨 두었지만, 적어도 유인원 시대의 문을 열었던 시저의 죽음으로 한 단락은 매듭지었다. 시저는 일종의 선각자이자 지도자다. 전작 두 편을 통해 시저의 탄생과 성장, 인류와의 대립을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은 지도자 시저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많은 분석에서 말했듯 종의 전쟁은 출애굽의 재현이다.

 

생각하는 유인원의 탄생과 핵전쟁, 전염병은 인간을 궁지로 몰아 넣었지만 여전히 그 수나 기술에 있어 유인원보다 앞서 있다. 나름대로의 평화공존을 원하는 시저는 전작에서 강경파인 코바를 죽임으로서 자신만의 왕국 건설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그들을 노린다. 어째서 두 종이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이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내 놓는다. 



타 종에 대한 적개심은 일반적인 동물의 본능이다. 특히 이성을 가진 두 집단이 부딪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전역을 지배하던 인간으로서는 새롭게 바뀐 환경을 인정하기 어려울 터. 그러나 더 근원적인 이유는 인간의 퇴보다. 유인원의 지성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인간을 치료제 없는 괴질로 인해 급속도로 퇴화하고 있다. 말하는 능력을 잃고 백치상태로 되돌리는 이 질병은 마치 전염성 알츠하이머와 같다. 유인원들에게 이성을 불어 넣은 기폭제가 알츠하이머 치료제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분열한다. 전작까지가 유인원과 인간을 대등한 조건에 올려 놓고 종의 관계를 실험했다면, ‘종의 전쟁은 인간의 마지막 침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히 선과 악, 인간과 유인원의 이분법을 벗어나 진화의 고리에서 탈락해 버린 인간의 마지막 발악을 그리고 있다. 물론 신비한 소녀 노바를 통해 일말의 여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그 또한 유인원 한 가운데서 공존하는 처지로 전락한 인간에 불과하다. 노바를 대하는 유인원들의 모습에서 종간의 교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것은 반려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의 대부분은 시저와 유인원의 고난을 다룬다. 인간으로부터 공격받고 대규모 이주를 하다 잡혀 노예생활을 하는 모습, 예수를 연상시키는 시저의 희생, 지도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저 등 다양한 변주를 통해 선각자의 고뇌를 잘 그려냈다. 영화의 마지막, 그나마 남아있던 인류의 무력집단이 자연에 의해 몰살 당하는 모습은 지구가 유인원을 진화 전쟁의 승자로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다만, 아직 끝은 아닌 듯 하다. 인류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고 유인원은 소수다.

 

인류의 결말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영화적으로는 더 이상 진도가 나갈 것 같지 않다. 인류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속편이 나온다면 무의미한 반복이 되지 않을까. 가장 좋은 것은 두 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일텐데, 상상속의 노바가 그 역할을 잘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