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언제 들어도 좋은 말] 허세 가득한 그의 넋두리

슬슬살살 2018. 2. 25. 21:22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그의 세 번째 작품이자 두 번째 산문집이다. 첫 작품인 <보통의 존재>가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지만 소설은 죽을 쒔다. 그리고 다시 산문집으로 돌아왔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편치 않다. <보통의 존재>가 독자들에게 일기장을 훔쳐보는 야릇한 즐거움을 줬다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별로 달갑지 않은 된장남의 연애론을 술자리에서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혼을 하고 다른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다시 헤어지기까지의, 평번한 얘기지만 그 방식은 결코 범상치 않다. 미안하니만 안 좋은 쪽으로. 인사동 한켠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단골 카페, 급하게 옷을 구하러 들어가는 백화점, 가슴크기와 섹스를 쿨하게 이야깃거리로 삼는 여유넘치는 지인들에서 '나는 작가야, 나는 뮤지션이야'하는 '척'이 과하다.


물론 사회에서 어느정도 성공한 남자의 연애라면 부러움을 인정하고 이런 찌질한 감성으로 삐딱한 시선을 견지하지는 않을 터다. 열받는 포인트는 그런 여유로움을 감추고 죽는 소리를 하는 작가의 요상한 자극이다. 공부 잘하는 놈이 깜빡 잠들었다고 죽는 소리 하는 만큼 꼴보기 싫은게 없는데 이 책이 딱 그렇다.


이석원의 마음가짐이 그렇다 보니 문장도 전작들보다 한껏 멋을 부렸다.


당신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다고.
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바라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빈말이라고 좋으니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 뜻에 다를게요, 가 아닌 끝내 나를 이해해달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소피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 한들 당신이 몰라주면 소용없는 거니까. 그건 온 세상이 몰라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유난히도 쿨해 보이기 위한 문장은 허세로 보인다. 쉬운 문장과 독특한 단어 몇개를 조합해 덤덤한척 던지는 그의 방식이 불편한 게 나뿐만은 아니겠지. '그녀'와의 사랑이 얼마나 독특했는지, 사랑의 방식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허세를 휘감고 있는 이상 술자리의 넋두리만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