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샴페인 친구] 알아도 소용없다. 매번 걸려들고 마니까.

슬슬살살 2018. 4. 2. 21:37

스포일러


이게 노통브지. 말랑말랑한 소재로 가볍게 전개하다 굵직한, 핵폭탄급 반전을 던진다. <적의 화장법>에서 보여줬던 무시무시한 승부사의 모습이 이번 <샴페인 친구>에서도 보인다. <적의 화장법 이후에 그녀의 소설에 완전히 매료 됐지만 그 이후에 읽은 것들은 모두 평타 수준이었다. <살인자의 건강법>, <푸른수염>, <아담도 이브도 없는>까지.. 특히 언어속에 숨겨진 기호 중심으로 풀어내는 작품은 번역서의 한계로 인해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샴페인 친구>만큼은 다르다.

마지막의 반전을 던지기까지, 이 소설은 시종일관 자전적 스탠스를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반전이 일어난 이후에도 화자의 인칭은 변하지 않는데 그 자체가 매우 기괴하다. 작중 주인공은 아멜리 노통브, 저자다. 부르조아적 관점에서 나름의 입지를 갖추고 있는 문단의 중견, 아멜리 노통브는 우연찮게 술친구 '페트로니유'를 만나서 의기투합한다.


문득, 나는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한 빌라의 창문을 통해 페트로니유의 소녀 시절을 얼핏 본 것 같았다. 극좌파의 이상에는 찬동하지만, 뻔뻔할 정도로 추하기만 한 골동품, 충격적일 정도로 멍청한 독서,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조리하게도 귀족적인 취향을 가진 소녀의 진정한 고통을.


작가 지망생인 그녀는 노통브와는 정 반대에 있는 인물로 나름대로 문학적인 신선함을 갖춘 인물이다. 팬과 작가로 만난 이들은 샴페인을 나누며 인생의 동반자 같은 우정을 나눈다. 적어도 페트로니유가 작가로서 성장하고 사막으로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그 여행 후에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자기를 학대하고 술집을 전전한다. 결국 그녀는 그녀를 구하러 온 노통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에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 죽는 건 크리스토퍼 말로가 아냐'. 그녀가 내 시체에 대고 말했다. 그녀는 내 배낭을 뒤져 이 원고를 찾아냈다. 그녀는 이 원고를 주머니에 넣고 내 시체를 생마르탱 수로에 내던졌다.


엄청난 화자의 전환이다. 아니지, 화자는 그대로지. 정확히는 화자의 생사가 갈리고 그 이후에도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주 낮선 방식은 아니다.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 역시 시체의 입을 빌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죽은자의 목소리가 반전 요소라는 점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90%를 저자의 자전적 우정 이야기로 끌고 오다가 단 한 줄로 방향을 뒤집을 때의 짜릿함은 완전한 오리지널이가. 심지어 우리가 읽고 있는 이야기를 출판한 게 페트로니유라는 설정은 독자를 가상과 실재의 경계선에서 끝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한편, 나는 수로 밑바닥에서 얌전한 시체가 되어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나한테 아무 쓸모도 없는 교훈을 얻는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걸 아무리 알아도 소용이 없다. 매번 걸려들고 마니까.


이렇게 추리소설적인 반전을 위해서 지루함을 참아내야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촘촘하고, 노통브 특유의 언어유희도 살아있다. 여성다움이 살아 있고 촌철살인과 풍자도 고스란 하다. 때문에 자전적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성을 보인다. 그런데 거기에 살인사건이라니. 노통브의 방식은 아무리 알아도 소용이 없다. 매번 걸려들고 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