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제3의 물결] 물결의 끝에서 다시 보는 시작점

슬슬살살 2018. 2. 9. 23:47

최근 불고 있는 비트코인의 광풍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일반 대중 뿐 아니라 수많은 경제학자, 전문가들 사이에도 갑론을박하는 이 주제에 대해 주제넘은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진실이 무엇이건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여년 전, 엘빈 토플러의 유명한 저서 '제3의 물결'을 통해 세상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에너지원의 고갈, 대량생산 시대의 종말, 개인화, 탈산업화를 주장했던 그의 글은 이제 현실이 되어 그 다음 단계의 모습까지 바라보는 실정이 되었다. 우리가 이 변화에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러한 변화들이 혁명에 버금가는 격변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변화가 고작 반세대만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고작 산업화 정도로 벌어지는 세대간극이 이런 추세라면 더 세밀한 세대갈등을 유발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현재진행형인 성별간 갈등이 이러한 전조는 아닐런지.


제3의 물결은 흔히들 상상하는대로 정보통신 변화를 주장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인문학적인 접근과 철학적인 솔루션을 담은 글이다. 엘빈 토플러는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몇가지 변화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놀랍게도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우리는 그가 앞서 기술한 세상 속을 걷게 되었다. 엘빈이 세상의 혼란을 안정시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였음은 물론이다.


대량시장은 표준화된 상품을 필요로 하고 대량판매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획일적인 노동자 '대중'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은 자극에 의해서 똑같이 동기가 부여된다고 배웠었다. 따라서 유능한 관리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고 배워왔다. 사실 이 사고방식은 제2의 물결의 성황 하에서는 대체로 옳았다. 오늘날 제3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뒤부터 기업관리자들은 종래의 사고방식이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업은 원래 대중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중사회가 탈대중화를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에너지는 언젠가 고갈될 것이 확실한 이상 사회는 스스로가 구조를 바꾸어야 했가. 이러한 불확실적인 세계관 속에서 인간이 더 고민과 불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기가 주관적으로 반영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위기의식과 고도화된 과학문명의 출현은 제3의 물결이 되어 인류를 덮쳤다. 엘빈은 몰랐겠지만 세번째 물결 마저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우리는 이를 정확히 경험하고 있다. 보다 잔혹해진 범죄들, 생명경시, 세기말적인 가치관, 미래를 바라보지 않는 세대의 등장 등등.


제3의 물결 문명은 대조적으로 제1의 물결사회와 아주 흡사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집중화를 피한 생산, 적절한 규모, 재생 가능한 에너지, 탈도시화, 가내노동, 고도의 생산소비활동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 뒤에 올, 아니 당장 내 딸이 살아가야 할 4번째 산업사회는 어떤 가치관의 사회일까. 다시 앞의 비트코인 문제로 돌아가보자. 현재로서는 투기적 광풍으로 보이는 이 사례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혁명을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AI, 드론, IoT가 주도할 4차 산업혁명이 아이러니하게도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따뜻한 사회적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놀랍게도 이 책에서 엘빈은 기본소득, 공유경제의 아이디어를 이미 말한다. 그것이 제3의 물결을 헤엄치는 인류의 구명조끼가 될 지도 모른다며.. 어쩌면 제3의 물결에서 발견한 이러한 라이프 자켓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더 강력한 쓸모를 지닐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건, 국가가 부르면 움직이는 관료적 사회는 이제 종말을 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