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배꼽] 흑역사가 된 베스트셀러

슬슬살살 2018. 4. 1. 10:06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후에 잘못된 삶을 선택함으로서 그의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부정입학에 연루 된 이인화, 소통하지 않고 극우의 모습을 보인 이문열,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까지.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작품의 진정성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다.


인도의 수도자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지만 극단적으로 치달은 작가의 추종자들 덕분에 흑역사가 되어 버렸다. 또 장광설과 비논리적인 주장, 독단성도 오쇼를 이단으로 몰기에 충분하다.


어떠한 믿음도, 관념도 갖지 말라. 믿어야 할 것이란 세상에 없다. 그렇다. '알아야'할 건 많지만, 믿어야 할 건 없다. 믿을 필요도 없다. 믿음이란 모두 두려움, 공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믿음에 대하여


철학이란 순전히 마음의 여행이다. 실제로는 어디도 가지 못한다. 철학하는 그대는 제자리에서만 맴돈다. 그것은 꿈의 투사다. 그대는 지금 여기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 그대가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눈만 뜨면 곧장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철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철학에 대하여


이런 식이다. 독단적이고 단정적인 오쇼의 가르침은 보는 이에 따라서 사이비로 보일 수도 있다. '배꼽'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궂이 이런 비유를 들어야 할 까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우화와 강의를 연결시킨다. 어릴 때 '탈무드'를 읽으면서 왜 궂이 이런 비유를 들까, 이게 무슨 수천년을 내려온 지식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는데 '배꼽'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종교가 몸이라면 윤리는 그 그림자와 같다. 참으로 종교적인 그대는 마땅히 윤리적이다. 그러나 그대가 아무리 윤리적이라 해도 참으로 종교적일 수는 없다. 윤리는 그림자처럼 온다.


특히 종교가 윤리에 우선한다는 가르침이 훗날 그들의 추종자들을 맹신도로 만드는데 기여한게 아닐까 싶다. '배꼽'은 쓰레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 우화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