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지 않은 광주민주화운동 소재 영화의 하나다. 소재 특성 상 아무리 대충 만들었어도 비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와 비평이 따로 노는 특징이 있다. 물론, 택시운전사의 완성도가 낮은 건 아니지만 너무나 차분한 전개 때문에 지루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다만, 5.18의 주변 인물들을 조명하는 관점이 꽤나 신선함을 준다. 보통은 5.18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시민운동가, 기자, 도청 안의 사람들, 특수부대,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를 토대로 이야기 구조를 만들 터이다. 그런데 <택시운전사>는 5.18을 외부에 알렸던 기자를 도왔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당시의 광주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권의 민낮을 가리기 위해 모든 보도는 통제됐고 빨갱이 프레임이 덮어 씌워졌다. 기가 막힌 건 당시의 그 프레임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증인과 증언이 있는 명확한 사태에 대해 이토록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사뭇 신기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5.18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창피한 일이다. 이렇게 닫힌 광주를 몰래 들어간 인물이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다. 당시 광주에 진입할 때 택시기사 김만섭씨의 도움을 받았고 이 영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홀로 딸 하나를 기르는 김만섭은 평범한 택시운전사다. 사납금 걱정하면서 도심에서 데모하는 대학생을 보면서,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는 안하고...'하고 혀를 차는 그런 소시민이다. 그랬던 그가 겐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를 접하고는 진실을 마주한다. 극중에서 김만섭씨는 시시 각각 변화한다.정부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믿는 소시민에서 진실을 마주한 시민으로, 다시 위험에 뛰어드는 영웅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우리사회가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택시운전사'가 영화적으로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송강호가 특별히 연기변신을 보여 준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흐름도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5.18의 진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중에 특별한 반전이 있거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다 특별한 걸 보여 준다. 손님을 태워주기 위해 갔다가 홀로 빠져나오지 않은 택시기사, 명령에 의해 검문을 하지만 통과를 눈감아주는 하급장교(물론 사실은 아니다), 부상자를 무료로 실어나르는 택시기사(이건 진짜다). 당시 광주는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시민들은 서로 돕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영화의 특별함은 평범한 시민을 집중적으로 보여 줌으로서 5.18을 보다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한데 있는게 아닐까. 이 영화를 본 천만명은 영화 감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부채 탕감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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