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육체를 파괴하지만 사기는 영혼을 파괴한다. 사기라 함은 본질적으로 신뢰에 대한 배반이다. 거기에 금전적인 피해까지 더해지니 사기 피해자의 고통은 결코 살인에 못지 않다. 1~2백만원 떼어먹혀도 속이 쓰려서 몇날 몇일을 잠을 못잘 텐데 전 재산, 소중히 모은 등록금, 결혼자금, 전세금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심정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은게 사실이다. 일확천금 바라더니 당해도 싼 거 아니야, 멍청하게 저런 걸 당하냐 하는 색안경들은 피해자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잘 기획 된 대형 사기일수록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끌어들인다는 특징이 있어서 인생을 뿌리째 뒤흔든다.
건국 이래 최대 사기라는 조희팔. 피해액만 2조 5천억원이다. 피라미드식 사기를 이용해 사기를 친 조희팔은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죽음을 의심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신출귀몰한 사기행각으로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만들었고 그들 대부분이 인생의 나락에 떨어져 있다. 사기 피해는 국가에서 지원을 받기도 힘들다보니 많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연기깡패 이병헌이 사기 대부 진현필 역을 맡았고 강동원이 그를 쫒는 검사로 등장한다. 김우빈은 진현필과 김재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장군을 연기한다. 진현필은 박장군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해 초대형 사기를 성공리에 치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다. 김재명이 그를 집요하게 쫒지만 실패, 박장군은 변심에 변심을 거듭하다 결국 김재명의 편에 서지만 검거 실패에 따라 건강도 잃고 돈도 잃고 폐인이 된다. 끝까지 집요함을 놓지 않은 김재명이 결국 필리핀에서 진현필을 검거하게 된다는게 영화의 주 스토리. 사기 영화가 다루는 반전에 반전, 뒤통수에 뒤통수가 너무 빈번하게 나와서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세 배우의 연기가 모든 단점을 커버한다. 특히 탐욕 그 자체로 보이는 진현필은 이병헌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툭툭 내뱉는 감칠맛 나는 대사들도 좋고.
"돈은 다 좋은데 냄새가 별로야. 냄새가"
"사기?, 그게 조 단위가 될 때는 뭐라고 부를것 같아?"
하지만 결코 영화가 가볍지는 않다. 진현필에게 사기를 당한 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거나 사기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의 끔찍함은 결코 호러물에 못지 않다. 그런 그들의 피를 쌓아 올려 호의호식하면서 또다른 사기를 준비하는 진현필의 추악한 모습이 너무나 강력하다. 영화 말미, 교도소 안에서도 고생하지 않고 의무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허탈하면서도 맥이 빠진다. 고작 저렇게 잡혀 있는게 현실일거라 생각하는 모습은 더더욱.
'영화 삼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놈이다] 그게 그 영화다 (0) | 2018.05.14 |
---|---|
[더 킹] 컬트영화보다 더 엽기적인 정치검찰의 실태 (0) | 2018.05.07 |
[블랙팬서] 여러모로 이질적이었던 새 시리즈 (0) | 2018.04.26 |
[택시운전사] 부채의식으로 바라보는 5.18 (0) | 2018.04.08 |
[코코] 잊지만 않는다면 늘 함께 있다 (0) | 2018.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