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용기가 필요한 진짜 러브스토리

슬슬살살 2018. 4. 22. 10:35

관찰용 개미집에서 개미는 인간을 인식하지 않고 주어진 본능에 따라 굴을 파고 메꾸고, 알을 낳고 먹이를 모은다. 인간은 그냥 그걸 자세하게 바라볼 뿐이다. 물론 원한다면 언제든 그 작은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개미집은 원래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비싸기도 하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일종의 관찰용 개미집 같은 책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평범한 두 남녀의 연애와 결혼, 늙어감을 통해 결혼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 스토리다.

 
알랭드 보통은 어디서나 있는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토이 소설의 주인공인 라비와 커스틴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드 보통의 부연설명이 없었다면 라비의 섬세한 애정을, 커스틴이 가진 강인한 생활력을 그냥 성향으로만 받아드렸을 터다. 보통이 설정한 그들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들을 소설 밖에 존재하는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알랭드 보통은 이 둘을 통해 표피적인 결혼생활과 그 안에 담긴 갈등, 해결, 애정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현상을 보여 준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성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눈에 씌워지는 콩깍지라는 설명보다 이 얼마나 자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인가. 결혼은 시간이 지나서는 '~했다'라는 평범한 사실이 되어 버리지만 결혼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한다'의 시점에서는 낭만적인 제안인거다. 이 소설은 연애와 결혼, 육아와 늙어감을 통해 연애-결혼생활의 괴리감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한다. 간혹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 삶을 '너만 그런게 아니야'라는 위안을 삼게 하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인간, 커플, 부부는 완벽해지려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평범한 인생을 사는데도 용기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 극단적인 분노와 상대에 대한 비난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결혼의 특질이다. 완벽함을 버리고, 조금 더 특별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릴 대 우리는 비로소 평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