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김원일 중단편선]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문학

슬슬살살 2018. 5. 13. 10:08

1960년에 김승옥이 있었다면 1970년대에는 김원일이 문단의 제일 첫 자리에 있다. 문학적 성취를 넘어 문단 그 자체를 뒤흔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경제발전과 독재가 뒤엉켜 갈피를 못잡던 1970년대는 문학적으로도 혼란의 정점에 있었다. 전쟁 전에 태어나 이념에 대한 대립을 10대에 겪은 작가들은 냉소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김원일도 비슷한 케이스. 


피아노 소리가 나는 양옥 이층 창이 열려 있었고, 바로 그 밑 맞은쪽 판자벽 아래 거지가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숙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 소녀는 거지를 보자 몸이 완쾌되었느냐구요? 완쾌까지는 되진 않았지만 그로부터 꼭 팔 년을 시름시름 더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월 하순 목련 꽃잎이 다 지고 그 향기가 뿌연 하늘속에 사라져갈 즈음, 면도칼로 정맥을 끊고 자살했지요.(이야기꾼)


전집의 첫 작품인 '어둠의 혼'을 지나 '이야기꾼'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김원일의 폭력성에 눈쌀이 찌뿌려진다. 순수문학에서는 보기 힘든 잔인한 폭력성이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기는 하지만 폭력의 원인에 있어서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전쟁의 가난, 이념적인 혼란,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절망 등등. 6~70년대 소설이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이지만 이토록 강렬하게 개인을 박살내는 경우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사회가 만들어 낸 폭력의 결과물은 늘 개인을 향하고 자신 또는 주변인을 박살내는 것으로 그 소명을 다한다. 김원일의 소설에서 개인은 늘 무력하다.


기차가 굴을 벗어나자 나는 선로 아래 비탈로 힘껏 몸을 날렸다. 나는 T역에 하차하기 싫었고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까마득히 치솟는 기분에, 세찬 바람이 시원했다. 그 느낌은 순간적이었다. 공중에 뜬 내 몸은 차가 달리는 속도의 반작용으로, 마치 지남철에 끌리듯 다시 차체로 강하게 빨려 들었다. (나쁜 피)


어떤때는 자살하고 어떤때는 미쳐 버린다. 아버지가 미치는 경우도 있고 소중한 이를 쉽게 잃어버리기도 한다. 처지는 절박하고 욕구는 절실하나 돌아오는 결과는 더욱 비참하다.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작가는 소명을 다 했다고 봐야 하나.


그날 저녁, 고모가 할머니 유품을 정리할 때, 할머니가 사십여년을 차고다닌 낡고 닳아빠진 비단 꽃주머니 속에서 동전 삼백원과 증명서 한 장이 나왔다. 모서리가 닳은 그 증명서는 누렇게 색바랜 아버지의 손톱만한 흑백사진이 붙은 '보도연맹 가입증'이었다. (미망)


작품은 후기로 갈 수록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점차 화해와 회복의 기미를 조금씩 그려 넣는다. 뒤로 갈 수록 점차 가정의 분위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김원일이 그리고 있는 가정에서는 늘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월북한 아버지 대신 강인한 생활력으로 아이들을 키운 홀어머니 때문인 듯 하다. 김원일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늘 집을 떠나거나 정신이 나가있다. 강인한 어머니는 작은 추억 한 개를 소중히 간직하고서 그 고난한 세월을 이겨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후기 작품에서는 자신에 대한 파괴는 줄어들었지만 묵묵히 고통을 이겨내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고통이란 근원적인 문제를 내 자신이 감상적으로, 아니면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두려움을 비수처럼 품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 고통의 참상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일컬어온 진실 자체를 배반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먼 이 시대가, 또는 화단이 내 작업을 외면하기에 나는 오히려 그것을 빌미삼아 게을러졌나. 그도 아니면 단순한 진통이거나 침체일까. 그 모든 것도 아니라면 시애 때문일까. (마음의 죽음)


김원일의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하늘의 색이 달라 보인다. 칙칙하고 무기력하다. 희망이라고는 한 톨도 주지 않는 작품의 틈바구니 안을 헤메이는 경험.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그러한 고통조차도 어찌보면 하나의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