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부담감,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현학적인 늬앙스때문에 걱정을 좀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가벼워 놀랐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세상살이를 글로 옮긴 것이다. 화자는 철학적이고 비판적인 고양이이고, 소재는 그 주인과 친구들이다.
요컨대 주인도 간게쓰도 메이테이도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백성으로, 그들은 호로박처럼 바람에 불려도, 초연한 척하지만 실은 역시 세속적이며 욕심도 있다. 경쟁의 관념, 이기자 이기자 하는 마음은 그들의 일상 담소 중에도 언뜻 언뜻 풍기며, 한걸음 나아가면 그들이 평소에 매도해 마지않는 속골들과 한통속의 동물이 되고 마는 것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아 불쌍하기 그지없다 하겠다. 다만 그 언어 동작이 여느 얼치기처럼 판에 박은 것 같은 언짢은 냄새를 띠지 않은 건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한 점이리라.
재미있는 건 고양이의 주인들과 지인들이 반푼이 수준의 한량이라는 점이다. 지식인이랍시고 에헴하고 앉아 있지만 정작 사회에는 쓸모 있는 짓거리는 하나도 하지 않는 인간들인데 고양이의 눈에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
'이렇게 나 자신과 미치광이만을 비교해 유사한 점만 계산하다간, 아무래도 미치광이의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방법이 나쁘다. 미치광이를 표준삼아 나 자신을 그쪽에 끌어다가 해석하니까,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제3자, 동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신선한 편이지만(쓰여진 시기가 1900년이다) 날카로운 비평과 선비계급에 대한 짖궂음이 재기발랄하다. 고약하다 싶을 정도로 주인장을 바보취급하기는 하지만 밉지 않을 적절한 수준을 지키는 문장 문장이 마치 오쿠다 히데오 같다. 어쩌면 현대의 일본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묘한 블랙조크의 시초가 나쓰메 소세끼인지도 모르겠다.
나갈 수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애쓰는 건 무리한 노릇이다.
무리한 짓을 강행하려니까 고통스러운 것이다.
너절하다. 스스로 찾아서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 좋아서 고문을 당하는 것은 너절하기 짝이 없다. "이젠 그만하자. 멋대로 하려무나. 아둥바둥은 이제 더 이상 원치 않아. 질렸어"
신문 연재 작품이라 불필요하게 길어졌지만 덕분에 각 장이 짤막해 읽기 편한 장점도 있다. 내용도 어렵지 않기에 일본의 근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좋다. 어이없이 끝나는 감도 있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장단점이 있다. 위대한 작품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1900년대의 일본상을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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