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고령화가족] 군상 가족의 마지막 활극

슬슬살살 2018. 5. 29. 21:43

아무리 상상의 산물이라지만 이런 가족이 진짜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있을것 만 같은 가족의 이야기다. 그들은 제목 그대로 '고령화'한 가족. 젊어서 하류 인생을 전전하다 늙어버린 인간 군상들이 다시 한 집에 살면서 벌어지게 되는 사건을 담고 있다. 총 3단계로 구분되는 이 책은 '실패한 인생 한데 모이기'-'티격태격 찌질한 다툼'-'마지막 인생 역전과 나름의 이해'순으로 이어진다.


#실패한 인생 한데 모이기
젊어서의 바람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칠순이 넘은 노모, 싸움깨나 했었던 삼류 건달 오함마, 그나마 대학물까지 먹었지만 충무로 뒷길을 전전하다 마흔이 넘어 에로영화로 간신히 입봉한 주인공, 바람을 피다 쫒겨난 막내 미연과 함께 세트로 딸려온 조카 민경까지. 이들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으로 간신히 마련한 빌라에 모이게 된다. 물론 돈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쓸쓸히 뒤쳐져버린 아이들을 노모는 반갑게 맞이한다.

사실, 부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함마는 어릴 때부터 비만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고 미연도 훤칠한 키에 건강미가 넘쳤다. 나 또한 술에 찌들어 몸을 망치기 전까진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는 건강체질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 패배하고 돌아온 것이 모두 어릴 때 잘 거둬먹이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이 대목이 참 재밌는데, 실패한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고기반찬을 해가며 내심 즐거워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위안은 남몰래 눈물 흘리는 설정보다 훨씬 감성적이고 직접적이다.  


# 티격태격 찌질한 다툼
어쨌거나 사고뭉치들이 한데 모였으니 좁은 집구석이 시끌시끌하다. 형제들은 서로 으르렁대고 경제력 없는 삼촌들은 조카 앞에서 체면을 구기기 일쑤다. 동네에서 쑤근대는 소리도 낮간지럽다. 조카 피자를 뺏어먹지 않나, 용돈을 삥뜯지 않나. 아무튼 읽는이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찌질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만들어낸다. 억지로 만들어낸 설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서 더더욱 뒷목이 근질근질하다. 그 와중에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들 셋이 모두 아빠가 다르다는 것. 형과는 이복형제에 여동생과는 이부남매다. 이들의 갈등은 민경의 가출과 함께 잠시 봉합된다.


# 마지막 인생 역전과 나름의 이해
오함마는 가출한 민경을 찾기 위해 예전 조직의 바지사장을 맡는다. 존재감 없던 깡패 형이 오랫만에 사람 노릇 하는 것. 말로는 교도소 1~2년 다녀온다지만 50이 넘어 깜빵 생활이 가당키나 할까. 민경은 찾았지만 오함마가 조직의 돈을 들고 외국으로 튀면서 인생 반전의 기회가 열린다. 오함마 대신 조직으로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가게 된 한감독도 형의 인생을 이해한다. 엄마를 이해한다. 오함마는 잡히지 않았고 생사를 한 번 넘어오면서 한감독의 인생도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첫사랑을 만났고 조카에게는 운동화를 사 줄 정도가 됐다. 미연은 순두부 가게를 냈다. 오함마는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다만 엄마는 죽었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