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내면의 공격성을 만족시키고, 우리 외부의 영웅을 손에 넣는다 모험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얻은 영웅을, 물론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월드컵이 시작됐다. 세계는 잠시 평화를 내려 놓고 가상의 전쟁을 숨죽이고 보게 된다.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전쟁인 월드컵을 보다가 <시드니>를 떠올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는 독특한 일본 기자 한 명이 있었으니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당시에도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이번에는 프리랜서 기자 역할로 시드니를 방문한다. 원체 스포츠(특히 마라톤)를 좋아하고 이런 저런 에세이를 많이 내왔기에 특별히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재미있는 기획이다. 기자가 아닌 작가의 눈으로 올림픽을 바라본다는 것은. 특히나 하루키 정도라면 말이지. 원래 에세이가 더 뛰어난 작가가 아니던가. 시니컬하면서 겉멋이 없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정한 하루키스러운 글들이 멋지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김영하의 월드컵 관전기, 박민규의 마라톤 참가기같은게 있다면 열심히 읽어 줄텐데. 한강이 쓴 동계올림픽도 재미있었겠다. 여행기는 차고도 넘치게 쓰면서.
화려한 소품, 그것이 이른바 올림픽입니다. 이 소품은 아주 강한 인력을 갖고 있어서, 그 표면에 세계 일류 운동선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TV화면이 내보내는 것은 그런 화려한 겉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다지 화려하다곤 할 수 없는 내부늬 현실적인 풍경입니다.
올림픽 대회는 태풍의 눈을 닮았습니다. 그 안에 실제로 포함되면 전체적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곳에 오래 있어도, 아니, 오히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세부는 잘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세부뿐입니다. 이를테면 하키의 스틱 뒤집기.
하루키는 올림픽 기간 내내 시드니에서 경기를 본다. 기자가 아닌 작가로서 올림픽의 본질을 고찰하는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물론 스포츠로서의 가치가 아닌 올림픽 본질의 고요함. 상업적 포장 너머에 있는 찰나의 주제의식을 포착하고 있다. 워낙 달리기를 좋아하는 하루키라 절반 이상을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할애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놓치지 않는다.
철인3종 경기 선수들의 정신력은 육상 선수와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마라톤 선수가 '이번에는 글렀으니 적당한 데에서 포기하자' 이런다면, (특히 일본에서는) 아마 여론의 비판이 쏟아질게 분명하다. 저 녀석은 불성실해, 정신상태가 글렀어, 하고. 그러나 철인3종 경기 선수의 눈으로 보면, 상위에 들어갈 가망이 없는 레이스에서 몸을 다치거나 축나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무의미하면서 생각없는 행동이다. 오히려 그 자리는 일단 포기하고 다음 경기에 대비한다. 분함은 다음 레이스 때 활력으로 활용한다. 그것이 철인 3종 경기에서의 정론이다.
과연 무엇이 스포츠인가. 포기하지 않는 불멸의 의지? 아니면 합리적인 판단 아래 다음을 기약하는 승부? 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우리는 23일간의 올림픽 체류기를 통해서 스포츠 전쟁에 대한 본질과 아무것도 아닌 것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나 그 곳이 시드니인지라 더더욱 어울린다. 역사적, 정치적, 지리적, 생태적 그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은게 없는 국가. 막상 가가운 곳 같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특별한 국가인 호주에서는 올림픽 조차도 호주스럽다. 하루키를 통해 듣는 시드니의 목소리는 20년이 지나서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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