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쉬운 문장, 깊은 여운
이 시대에서 가장 많은 젊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2004년 작품 모음집이다. 8편의 작품과 30페이지 정도의 해설이 따라 붙어 있다. <냉소와 열정의 변증법>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이 해설때문에 뭔가 어려운 소설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소설만큼이나 괜찮은 이해설은 훌륭한 네비게이터의 역할을 해 준다. 물론 해설이 없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어렵지 않은 해설은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2. 희화와 끔찍의 경계선에서
2004년, 혹은 그 이전의 김영하는 일상이 주는 부조리와 공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들이다. 동창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약간의 죄책감으로 외면하는 <보물선>, 지옥 같지만 어처구니 없는 엽기 가족의 악다구니 <오빠가 돌아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사>까지.. 모두 희극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곰씹으면 비극을 넘어 끔찍함을 보여준다. 요즘 작가들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리를 다루는 장인이라면, 김영하는 덤덤 하게 '너 이런거 들어봤어?'하고 시작하는 이야기꾼이다. 원래 제3자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그렇게 끔찍하지 않은 법이다. 오히려 잠자다가 생각하면 섬뜩한 법인데, 김영하의 소설들이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뒤통수에 묵직함이 던져진다.
#3. 비극의 연출자를 향한 매서운 분노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날선 분노가 대단하다. 칼과 같은 말을 다듬고 다듬었다. 그런데 그가 겨누는 칼날을 받는 이들이 그리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것 또한 함정이다. 이런 비극을 연출하는 이들은 특별한 살인마나 범죄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무심한 평범한 인간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일들이 하나하나 비극의 소재가 되곤한다. 이사를 하다 찢어진 장판에 별거 아닌척 하는 짐꾼, 술주정뱅이 아빠, 주식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큰손들.. 특이하긴 하지만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이들이 벌이는 인간 군상이 연출하는 비극에 김영하는 분노한다. 김영하는 말한다. '인간이란 왜 이정도밖에 안되도록 생겨먹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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