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한 삶의 다양한 변주
황석영 작가의 작품에서 가난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글 속의 주인공들은 가난을 끼고 산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갈리우는데 하나는 가난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가난함을 견디는 이야기다. 두 가지가 섞이는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이 두 가지가 이야기의 전부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변주를 해내는 건 가상이지만 평범한 일상들의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천재는 악기를 가지리 않는다. 표제작인 <삼포가는 길>은 후자에 가까운 이야기다. 떠돌뱅이 둘과 작부 하나가 우연찮게 만나 삼포로 동행하는 짧은 이야기 속에 시대적인 상황, 가난에 찌든 촌민들, 서정적인 배경, 고난 속의 희망 같은 것들이 모두 담겨있다.
#2. 삼포가는 길
삼포는 일종의 이상향이다. 산업화에 밀려 이제는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장돌뱅이, 잡부들이 고향인 삼포로 돌아가려 한다. 여정에서 달아난 작부 백화를 만나 삼포 인근으로 가지만 삼포에도 이미 자본의 손길이 뻣쳐 있다. 이제 그동안의 삶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해야 하는 막막함이 그들을 감싼다. 이상향이 몰락하면서 다시 처절한 현실로 돌아오는 비참함이 묘한 현실인식을 준다.
"그럼 나룻배도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에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마저 낮설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버렸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AI와 수많은 기술의 발달로 하루에도 수십종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재와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막막함은 정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3. 시간을 넘어서
황석영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뛰어난 현장감에 깊숙히 빠지게 된다 극작가의 길을 걸어서인지 생동감이 넘치고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인물의 삶 중심으로 전개 되는 이야기는 쉬이 읽힌다. 그러면서도 단어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는 아름다움이 예술적인 가치를 더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와 사회가 낸 생채기에 병들어가고 지쳐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소외되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함으로서 그들을 사회 안으로 가져오는데 큰 힘을 준다. "그래, 저들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작가가 보이는 낮은 이들에 대한 애정은 우리의 삶을 조금씩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한씨연대기>를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삶을 살았던 평범한 노인네를 이해할 수 있고 <돼지꿈>에서는 배움이 짧은 달동네의 인생도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깨닫게 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7~80년의 한국을 이해한다는 건 곧 우리네 부모를 이해하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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