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복의 소설
어린 시절 밤을 지새며 읽었던 '은하영웅전설', 반 년 전쯤 유쾌하게 읽었던 '일곱 도시 이야기' 모두 전쟁과 전략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거기에 더해 블랙조크, 세상에 대한 냉소와 비웃음이 살아 있어서 얕은 삼국지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나름의 매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다. 둘 다 '다나카 요시키'라는 한 작가의 작품인데 이번에 읽은 창룡전도 같은 인물이 쓰기는 했다. 일본에서는 납세자 순위 5위에 랭크된 적도 있을 만큼 책을 많이 팔아치우는 작가라니 대단하기는 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 창룡전은 이모양인 건가. 기복이 심한 작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완전히 다른 작가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기복이 떨어져서이건, 유명세를 믿고 어린시절의 습작을 재출간 했건간에 이 정도 작가에게 이런 글이 작품이랍시고 존재하는 건 '나를 욕해 달라'는 소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2. 중2병의 극대화
관종과 센척을 합치면 중2병이 된다. '창룡전'은 중2병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3천년만에 환생한 용의 현신, 4형제. 얼굴도 잘생겼고 힘도 세고 죽지도 않고 나이도 어리고 똑똑하기까지하고 돈도 많다.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멍청하기만하고 돈만 밝히는 인간들이다. 이쯤되면 세상을 지배하는 비밀 세력과의 부딪힘은 필연이겠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는거다. 4형제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흠모하는 소녀 캐릭터를 간혹 넣기는 하지만 결코 로맨스가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이들 4형제는 말로는 조용히 살고 싶다지만 관심받고 싶어하는 잘난척, 주변 신경 안쓰는 센척이 결합해서 어마어마한 중2병을 연출하고야 만다.
#3. 시크함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중대사지만, 일본이 멸망하는 것은 세계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한 손실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로마도 멸망했고, 카르타고도 멸망했고 한나라, 당나라, 잉카... 일본도 언젠가는 멸망하겠죠. 역사에 예외 같은 건 없습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설이 난무한다. 대부분은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 관료적 분위기, 개발 중심의 성장 같은 사회적 매커니즘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기반한다. 그런데 그 불신이 어떤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사회 부적응자가 내뿜는 이유 없는 불평처럼 들린다. '은하영웅전설'의 얀 장군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이나 세상 부적응 천재인 류 웨이의 냉소같은 '멋짐' 없이 그냥 모두까기로 일관한다.
"시정부의 높은 분이 최전선에 나오셔서 명예로운 전사를 당해 주시면, 병사들의 사기를 끓는 점까지 상승시켜 드리죠."라고 말할 수 있는 '일곱도시 이야기'의 재치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같은 이의 작품일 수 있을런지.너무 힘을 준 시크함은 결코 멋지지 않다.
#4. 겨우 4권이지만 줄거리는 모든 권이 같다
총 13권 중 우리나라에 정발된 건 한권이 빠진 12권뿐이다. 그것도 예전 버전은 4권뿐이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4권 버전만 읽었을테다. 나도 그렇고. 그럼에도 결코 아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매 권이 비슷비슷할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체 모를 인물들이 류도 4형제를 노릴테고 결국에는 바닥을 기면서 패배하게 될거라는 확신. 너무 단조로운 패턴에 읽다보면 졸리다. XX한 비밀 조직의 등장 → 류도 형제에 대한 공격 → 악당 답게 방심 → 어쩔 수 없는 함정에 빠진 4형제 → 용의 현신 → 악당의 죽음 → 실제로는 XX따위는 우습게 보는 진짜 악당 등장 식으로 무한 반복되는 정형화 된 패턴이 너무나 따분하다. 완결을 읽지 않아도 궁금하지 않다. 안물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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