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슬퍼서.
감탄했다. 문장에.
맨부커상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래 권위있는 수상은 어렵고 심오한 작품에 주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소년이 온다>가 수상작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의 연장선으로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틀렸다. 쉬웠고, 심오했다. 어마어마했다. 글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흔이 되어가는 이때까지 읽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감탄스러운 글이었다.
내용에 앞서 눈에 띄는 것은 시점의 사용이다. 우리는 국어시간에 시점에 대해 배운다. 1인칭, 3인칭, 전지적 시점에 대해. <소년이 온다>는 정확히는 1인칭이다. 그런데 그 1인칭이 지칭하는 너는 독자가 아니다. 1인칭은 늘 주인공을 향해 말을 건넨다. 오히려 화자의 정체는 모호하게 다루다 소설이 마무리 될 무렵에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이런 장치를 통해 <소년이 온다>는 독자를 소설 속으로 집어 넣는다. 똑같은 글이라도 내가 그 안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몰입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 덕에 읽는 이는 5.18의 한 복판에 서게 된다. 죄책감과 슬픔, 분노와 무력함을 느끼면서.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에서 죽은 소년의 이야기다. 열 다섯의 동호는 그날 밤. 오월 광주. 도청에 있었고 19일 새벽을 맞지 못했다. 광주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실과 겹쳐서 쓰여진 소설은 유일하다. 마치 실사 위에 덮어진 애니메이션처럼 현실과 가상을 오가고 있는데 배경 사건을 현실의 것을 쓰면서 더더욱 리얼하게 다가 온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는 것고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감싸는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소설은 결론을 제시 하지 않는다. 그냥 그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여러가지 일들을 보여주고 하나하나에 의문을 품는다. 그는 왜 죽어야 했고 그들은 왜 그렇게 했는지. 옳고 그름을 떠나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소년은 묻는다. 희생자는 소년만이 아니다. 전남도청에 있었던 누나, 형들 하나 하나의 입을 빌려서 동호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조망해 나간다. 모자이크처럼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는 머리 속에서 작품을 완성 시킨다. 그러다,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 그란게 느이 작은 형이 으어어어, 말도 아니고 뭣도 아닌 소리를 지름스로 지 형에게 달라들더니 방바닥에 넘어뜨렸다이. 짐승맨이로 울부짖음서 말을 한게. 무슨 이야긴지 뜨문뜨문하게밖에 안 들렸다이.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한 순간에 폭발한 문장이다. 소설의 마지막 단원의 화자는 동호의 엄마다. 늙은 엄마가 덤덤하게 건네는 이야기에 뜨거움이 올라온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흘린 눈물은 어미의 아픔을 이해해서이며, 광주에 대한 원망이고 무력함에 대한 분노였다. 같은 일이 다시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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