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적 감성 물씬 나는 이 제목의 영화는 놀랍게도 레슬링을 소재로 한 성장 영화다. 아무리 잘 평가해 봤자 잘 만든 졸업작품 수준의 영화지만 몇몇 포인트에 있어서는 미친듯한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곤 한다. 물론 족구왕정도를 기대했다면 실망한다. 재능없는 레슬링 매니아 '충길', 다문화 가정의 막노동꾼 '진권', 불량 써클 블랙타이거 멤버 '혁준'이 각각의 이유로 전국체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국체전 진출은 커녕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통쾌한 볼거리, 멋진 승부는 당연히 없다. 노력 없는 결과, 재능 없는 성공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그나마 영화적 캐릭터에 가까운 '혁준'에게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력적이지 않다. 어색어색한 학생 연기는 부족한 제작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
바로 '혁준'의 캐릭터다. 독립영화에서 또는 저예산 영화에서 배우가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오로지 하나, 미친듯한 연기력을 보였을 때다. 하정우 병장과 양아치 양익준의 이미지는 거기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혁준 역의 신민재다. 불같은 연기력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독립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그 어정쩡한 얼굴과 허세 가득한 연기, 중2병과 성인 사이의 묘한 위치의 인간을 그럴싸하게 보여준다. 그를 그렇게 보이게 만든 건 100퍼센트 그 얼굴이라 확신한다.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의 머리(무려 25년 전 스타일)를 하고는 노랑 패딩과 함께 미용실하는 누나에게 만원을 삥땅치는 모습에서, 연애 한번 해보겠답시고 레슬링부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에서의 스포츠물 주인공을 보게 된다.
인생은 만화가 아니다.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좀 좋고 깡따구가 있는 정도로는 열심히 운동한 이들의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한다. 이 영화는 이런 어정쩡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깡패도 아닌, 공부는 접어버린, 어른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닌 이상한 위치에 있는 녀석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울하지 않다. 전국체전은 발끝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한 녀석은 계속 도전하고 나머지 녀석들은 제 갈길을 간다. 젊은 시절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추억 한장으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의 에피소드. 그걸 날것 그대로 잠깐 들여다 보는 재미를 준다. 이제 영화도 회로 먹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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