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추리소설의 나라다. 워낙 독서 강국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장르문학이 이렇게까지나 발달하는 나라는 드물다. 변변한 추리 소설가 하나 없는 한국의 독자로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대형 작가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의 추리 소설을 앞다투어 내 놓는다. 그 중 몇은 한국에서도 톱 클래스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한국의 추리소설 시장이 작아서만은 아닐 듯 하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나도 이번에 처음 들었으니. 그래도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에 랭크 된 걸 보면 평균 이상임은 짐작할 수 있다. 여성 민완기자인 다치아라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여러 단편들의 모음이다. 긴 호흡의 치밀한 구성 보다는 사소한 단서를 토대로 진실을 밝혀나가는 전통적인 추리물의 방식을 쓰고 있다. 건조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 '멋지다'라기 보다는 덤덤한 기록을 읽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다치아라이처럼. 그렇다고 문장력이 약한 건 아니다. 한 글자도 허투루 쓰지 않고 사건의 팩트를 오롯이 전달하려 애쓴다. 마치 추리 퀴즈를 푸는 느낌이다. 덕분에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은 약하지만 리얼리티는 강조된다.
정당성을 묻는 질문은 대단히 무겁습니다......저는 조사하는 걸 좋아하고, 남보다 잘하기도 합니다. 그걸 먹고 사는 수단으로 쓰고 있을 뿐이지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건 아닙니다.
아마도 전작에서 사고를 치고는 프리랜서 기자가 되어버린 다치아라이는 뛰어난 분석력과 관찰력, 추리력을 보이지만 여기에서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추리를 뽐내려 하지도 않고, 정의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혈질인 것도 아니고 다크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회사원처럼 일이니까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출근했으니 일할 뿐인 건가.
사건들도 강력 사건에 기상 천외한 트릭이 있는 게 아니고 사회면 한 켠에 실릴 만한 일이 벌어지고 인간의 탐욕 같은 것이 덮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일을 조금 빨리 알아챌 뿐인 노처녀 형사물이다. 독특하긴 하지만 반전과 캐릭터를 좋아하는 한국의 정서와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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