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의 연기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조연이지만 사실상의 주연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주인공을 빛나게 하고 영화를 맛깔나게 만드는 존재, 집밥의 라면스프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라면스프만으로 국을 끓일 수는 없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시도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이유는 맛은 같겠지만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레슬러>가 딱 라면 스프만으로 끓인 국이 되어 버렸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삼각관계가 된다는 설정은 참신하기는 했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 좀 더 섬세하게 전개해야 했는데 이성경이 유해진을 좋아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유치하고 작위적이다. 레슬링 배우겠다고 하는 것 까지는 좋지만 몸매를 드러내는 유치함이나 상상 속에서 아저씨와 뒹구는 모습 같은 것들이 말이지.
이성경이나 김민재나 영화에 있어서는 검증되지 않은 카드였던 만큼 <레슬러>는 사실상 유해진의 원톱영화였다. 그러나 주연에 맞춰서 코믹부터 정극까지 자유롭게 펼치던 유해진 배우는 고립된 스트라이커 같았다. 코믹, 정극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왔던 것들을 펼쳤지만 주변에서 받아주지 못했고 거꾸로 유해진에게 연결되는 장면 또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이성경의 마음이 가족에게 밝혀지는 순간, 그리고 김민재가 유해진에게 태클을 걸며 자신의 울분을 쏟아내는 장면. 전자의 경우는 어이없게도 이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성경의 부친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당장 의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 큰 갈등을 몇마디 대사와 술 한병으로 퉁쳐버린다.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좀 볼만하다. 이 장면에서의 감정의 폭발은 배우들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유해진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 - 귀여운 아저씨이지만 약간 하숙하는 느낌의 - 를 잘 살려서 친근하고 안쓰럽게 그렸다. 아들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하거나 희생하는 모습도 우리네 부모와 비슷해 공감이 간다. 오히려 어색했던 건 애매한 삼각관계를 그렸던 설정이다. 난데 없는 삼각관계에 관객은 혼란스럽다. 이것은 코믹인가 가족인가. - 제목만 봐서는 스포츠 영화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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